2024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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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교회가 간다 Ⅱ] 캄보디아 / 3. 컴퐁참 주교좌 본당의 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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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 공동농장서 ‘희망’ 일궈

밭작물 재배로 먹고 사는 문제 해결
기숙사 운영하며 교육 “교회가 희망”

[캄보디아=우광호 기자]

1901년 경기도 안성. 안성본당 초대 주임신부 공안국(孔安國, Gombert,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성당 마당에 무심코 심은 독일산 포도 묘목이 의외로 탐스런 과실을 맺은 것이다. 공신부는 안성지역이 포도재배에 적합한 기후 및 토양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고국(프랑스) 방문길에 포도나무 32종을 가져와 박숭병 당시 총회장에게 심도록 했다. 이것이 오늘날 유명한 ‘안성 포도’의 효시다.

100년 전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 지금 캄보디아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공안국 신부가 있다면 캄보디아에는 컴퐁참 본당 주임 제럴드(Gerald Vogin, 파리외방전교회) 신부가 있다. 제럴드 신부가 손짓으로 차에 타라고 했다. 본당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고루카(Coruka) 마을. 제럴드 신부가 만든 공동 농장이 있는 곳이다. 12살부터 20살까지 청소년 38명이(이중 세례를 준비하는 청소년은 7명) 맨발로 나와 신부와 기자를 반겼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 평생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그 아이들. 하지만 이제는 ‘희망’에 가득차 있다. 희망의 뿌리는 바로 ‘땅’. 모두가 고구마 등 밭작물을 재배하는 꼬마 농부들이다. 2년 전부터 공동체를 이뤄 함께 생활하고 있다. 땅은 본당에서 제공했다.

“씨앗을 뿌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신기할 수 없어요.”

12살 쓰라이 나잇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한다. 손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농사짓는 땅을 보여 주었다. 땅에는 각종 채소 등 진한 녹색들로 가득했다.

일단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뒤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제럴드 신부는 “두말 할 것도 없이 교육”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남자 아이들은 나은 편. 대부분 가정에서 여자 아이는 아예 학교도 보내지 않는다. 물론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제럴드 신부는 여자 기숙사를 만들어 여자 아이들에게 공부의 길을 터 줬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남자 아이들을 위해서도 별도로 기숙사를 만들었다. 두 기숙사를 운영하는데 한 달에 2000달러(한화 약 200만원)라는 거금이 소요된다. 그나마 얼마전까지 프랑스에서 보내오는 후원금으로 버텼지만 최근들어 그 후원금 마저 줄어 걱정이 태산이다. 어쩔 수 없이 버섯재배를 시작했다. 제럴드 신부는 매일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버섯이 자라야 아이들 공부 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 도와 주세요.”

20세 농부 청년 완디(Wandy)가 말했다. “이제는 우리도 희망이 있습니다. 교회가 그 희망이고 예수님이 그 희망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이들에게 ‘예수님 사랑해요’를 한국말로 가르쳤다. ‘땅과 함께 살아가는 해맑은 미소들’을 바라본지 1시간. 제럴드 신부와 함께 다시 차에 올랐다. 아이들이 차 뒤를 따라 언덕 아래를 함께 내달았다. 아이들이 ‘예수님 사랑해요’를 한국말로 크게 외쳤다.


■어느 공소회장의 신앙

죽을병에 걸렸다 살아난 것 보고
마을 사람들도 기도 모임에 참여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자가용으로 13시간 거리에 위치한 도담(Dodam) 마을.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수도시설이 없어 우물물로 살아간다. 문명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산골 마을. 하지만 이곳에도 놀라운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었다. 도담마을 니옴 살리(Nyom Sali. 53) 공소회장의 증언을 싣는다.

폴포트 정권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이 학살됐습니다. 당시 20대의 청년이었던 저도 베트남으로 피신했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한 프랑스 신부님을 만나 세례를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나무나 강, 폭포, 산의 정령에 기도하는 토속신앙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그 나무와 강과 산을 만든 높은 분이 있는데 바로 하느님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나무와 강과 산보다 더 힘 있는 신을 믿고 싶다는 생각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캄보디아에 평화가 찾아오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주일에는 일을 하지 않았고, 아침과 저녁이 되면 가족과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예수님 말씀대로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무당이 내 신앙이 나쁜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신들의 노여움을 사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나를 보고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와 아내, 남동생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습니다. 나중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을 정도로 심각해 졌습니다. 우리는 죽음만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은 나쁜 신을 믿어서 우리가 병을 얻었다며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당이 와서 “닭의 목을 쳐서 그 피를 집 주위에 뿌리면 병이 낫는다”고 했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마음이 망설여졌습니다. 아내도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린 마음을 다시 잡았습니다. 그리고 잠시라도 마음이 흔들린 것에 대해 하느님께 사죄하고 이대로 죽더라도 행복하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런 우리 가족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절로 병이 나은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 가족의 기도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불어나 30여 가구가 함께 공동체 생활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선교사제가 오셔서 1~2개월에 한 번씩 성체를 모실 수 있게 됐습니다.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모두가 다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캄보디아에 하느님의 복음이 널리 전파될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앞으로 번듯한 공소건물도 지어 진정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공동체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하느님 말씀에 따라 사는 철저한 신앙 공동체를 만들 생각입니다.

내 인생에서 하느님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한국의 신자분들에게도 저희들이 느끼는 행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설명
▶고루카마을 아이들이 농사일을 위해 밭으로 향하고 있다. 교회의 도움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아이들은 이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며 행복해 했다.
▶제럴드 신부가 마련한 여자 기숙사에서 캄보디아 소녀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캄보디아 도담마을 공소회장 니옴 살리씨.


우광호 기자 woo@catholictimes.org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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