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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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4> 박해자 사울, 회심자 바오로

끔찍한 박해자였던 사울을 사도로 부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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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노트 ; 폭도들에게 돌팔매질 당하는 스테파노의 얼굴은 천사처럼 빛난다.
그러나 사울은 스테파노를 돌로 친 자들의 옷을 맡아뒀다.
그 장소에 그가 함께한 것은 폭도들과 같이 그도 돌팔매를 던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 장면을 그려봤다.
그 사건으로 바오로 사도는 평생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괴로워했다.
바오로 사도의 그러한 고뇌를 그리스인의 상징 같은 조각물 위에 겹쳐 그렸다.
 

   그 당시 예루살렘에서 `사울`로 불렸던 바오로는 성전의 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모두 마치고 율법교사가 돼 스승과 작별하고 예루살렘을 떠난다. 예수께서 아직 대중 앞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전이라 사울은 예수를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남다른 열정으로 미뤄보면 고향 킬리키아의 타르수스로 돌아온 사울은 동포들 회당에서 율법교사로 여러 해 동안 봉직했을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한편에서는 천지개벽 이래 가장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골고타에서 사형에 처해진 예수의 속죄 희생과 부활이다. 이 소식은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순례자들을 통해 타르수스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각자는 그 사건을 달리 해석했다. 성 금요일과 오순절에 있었던 충격적 사건에 관해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유다 전통에 탁월한 식견을 갖고 있고 타르수스의 율법교사로 일했던 그는 나자렛 사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유다인의 수가 계속 불어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평범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제사장들까지 신앙을 버리고 나자렛파로 기울었다(사도 6,7 참조).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 요셉은 나자렛 예수를 믿고 이름을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로 바꾸었고, 토지를 팔아 그 돈을 사도들에게 바쳤다(사도 4, 36 참조).

 오순절을 예루살렘에서 지내고 킬리키아에 돌아온 그의 동향인 세 사람, 즉 안드로니코스와 유니아, 헤로디온은 모세율법을 멀리하는 편에 속하게 됐다. 이러한 일들이 사울의 마음을 어지럽혔고 더 견딜 수 없게 된 사울은 직접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했다.

 예루살렘에는 킬리키아 유다인들이 다니는 회당이 있었는데 사울은 그곳으로 갔다. 거기서는 매주 안식일 예배 후에 예수 제자들에 관해 큰 논쟁이 벌어졌다. 스테파노가 연설했던 자리가 바로 이러한 집회였다.

 스테파노는 메시아가 고난을 당하고 죽는다고 했던 예언자들을 언급하면서 예언자 이사야가 메시아를 묘사한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고난당한 `하느님의 종`이라고 주장했다. 큰 소동이 일어났지만 아무도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스테파노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사도 6,10 참조).

 급기야 유다인들은 폭력에 호소하게 됐고, 고함과 협박으로 스테파노를 붙잡아 장터 좁은 길로부터 공회당으로 끌고 갔다. 그들은 파렴치한 광신적 유다인들을 선동해 이 사람이 거룩한 성전과 율법에 거슬리는 불경한 말을 그치지 않는다고 말하도록 시켰다(사도 6,13 참조). 스테파노가 변론을 다 마치기도 전에 유다인들은 화가 나서 이를 갈면서 판결도 없이 그를 성 밖에 돌팔매질하는 곳으로 끌고 갔다. 사형선고를 받은 자들을 돌로 쳐 죽이는 곳이었다.

   #스테파노를 돌로 쳐죽인 사울

 사도행전의 이 대목을 대하면서 우리는 끔찍한 이율배반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잘못된 종교적 광신에 사로잡힐 때, 어디까지 추락하게 되는가. 하느님 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그 자신이 죄악에 빠져 불법을 자행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 이름을 내걸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최악의 불법이 있을 수 있을까.

 오늘날에도 그러한 범죄는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자신들의 종교법을 수호한다고 믿는 잘못된 사람들에 의해 한둘이 아니라 수천의 무구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는다. 역사는 수만 가지 모습으로 오늘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사울도 폭도들과 함께 달려가 돌팔매질 장소에 먼저 온 자들과 합세했다. 사도행전 8장 1절은 "사울은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율법교사로서 그는 스테파노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으나 그리스도의 첫 순교자를 죽인 자들의 겉옷을 맡아주는 일을 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바오로가 스테파노를 돌로 친 자들의 옷을 맡아 준 것은 모든 이들과 함께 스테파노를 돌로 친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 날은 사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날로 남게 된다. 그 사건이 온 생애 동안 양심의 가책으로 그를 괴롭혔던 것을 볼 수 있다. 스테파노를 돌로 쳐 죽인 것은 빈번히 그의 기억에서 되살아나고 있다(사도 22,22 및 26,10과 갈라 1,23 참조). "나는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1코린 15,9).

 그가 그날 밤 단 일초라도 눈을 붙일 수 있었을까? 그의 내면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일어났을까? 스테파노가 정말로 죄인이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그의 얼굴이 천사처럼 빛났던 것일까?(사도 6,15 참조) 정말로 그랬다. 그만의 환상이 아니었고, 모두가 그것을 보았던 것이다.

 돌을 맞아 피가 흘러내리는 순간에도 살인자들을 위해 기도하고자 무릎을 꿇고 부르짖을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었을까?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 7,60). 이 모든 것이 그의 마음을 뒤흔들고, 이 바리사이파 율법학자 마음속에서 되살아났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무를 다해야만 했고, 무력으로 나자렛파 이단을 근절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교회 신도들의 축출에 앞장섰다. 사울 자신이 그 동료들과 함께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사도 8,3)고 한다.

   #예루살렘교회 신도 축출에 앞장

 이 일은 한



가톨릭평화신문  201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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