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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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6> 성년기

첫째 가는 죄인,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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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노트
   바오로 사도는 위대한 교부들을 만들어낸 사막에서 3년동안 사색의 시간을 보낸다. 사막으로 떠나는 바오로 사도의 출발은 정신의 사막에 빛을 비추는 마음의 결연함 일 것이다. 스테파노 사건과 예수님 지체인 교회를 박해한 사건은 바오로 사도를 평생 따라다닌 멍에였다. 그의 아픔과 비탄의 눈물이 됐던 두 개의 가시는 언제나 그를 괴롭혔다. 사도의 열정 속에 숨겨진 아픔을 재구성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박해자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날부터 그의 삶이 변화됐기에 `다마스쿠스의 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의 올바른 변화와 동의어가 됐다. 교회사나 순교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적대하거나 고문했던 수많은 핍박자들이 주님의 빛을 경험한 후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들의 믿음을 공언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순교까지 했음을 보여 준다.

 `다마스쿠스의 길`은 모두에게, 심지어 범죄자에게나 가장 타락하고 방탕한 자에게조차 포기하지 않고 열려 있다. 다마스쿠스의 길에 나타나 사울을 구원했듯이,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가장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 삶에 들어온다.

 다마스쿠스로 인도하는 그 길을 우리도 뒤따라 가보자. 성 가까이에 다가섰을 때, 성을 가로지르는 큰 강으로부터 수정 같은 물을 공급받는 다마스쿠스의 초원(Ghoufa)이 눈앞에 펼쳐져 있음을 보게 된다. 야자수와 사과나무, 도금양(늘푸른 떨기나무) 같은 탐스러운 유실수들이 성곽을 둘러싸고 있다.

 다마스쿠스는 해발 690m에 자리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구약성경 창세기는 그 도시를 아브라함 시대에도 있었다고 말한다(창세 14~15장 참조). 그러나 요셉은 다마스쿠스는 아람의 아들이며 샘의 손자인 우스(창세 10,23)에 의해 세워졌다고 기록한다. 고대 아랍 시인들은 다마스쿠스를 `동방 세계의 눈`으로, `사막의 진주`로 부른다.

 아랍 전통에 따르면, 마호메트는 다마스쿠스를 천국으로 지칭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천국은 한 곳뿐이다. 다마스쿠스에서 살아 보면, 지상의 다른 어느 곳에 가도 이 같은 천국을 발견하지 못한다."

   사울을 찌른 두 가시

 다마스쿠스의 성문으로 들어가 보자. 그 문을 통해 바오로가 성으로 들어갔으므로 그때부터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우리는 옛날의 `곧은 길`로 향하기로 하자. 그곳에는 사울이 기거했던 유다의 집이 있고, 그곳은 후에 그리스도 성전이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늘날 이 자리에는 이슬람 사원인 자미(Jami)가 들어서 있다. 이곳으로 그리스도 사도 하나니아스가 사울을 찾아왔다. 하나니아스와 사울이 얼마 동안 함께 보냈는지, 그리고 하나니아스가 주님 편에서 사울에게 정확히 무엇을 드러내 보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울이 홀로 주님과 함께 있을 때 사울 입장이 돼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맨 처음 그를 전율시킨 것은 자기 자신이 조금 전까지 핍박했고, 감옥에 가뒀고, 사형에 처했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실은 무죄하고 칭송받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점이었을 것이다. 돌팔매에 상처투성이가 돼도, 자신을 죽인 자들에게 죄를 돌리지 말도록 주님께 간구할 힘을 가졌던 스테파노의 빛나는 얼굴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죽음에 동참했던 바로 그 사울을 위해서도 스테파노는 기도했던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행동이 하느님 권위와 율법을 수호한다고 생각했던 사울의 마음은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를 찌른 또 다른 가시는 더 날카로웠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그것이다. `네가 나를 믿는 자들을 핍박했을 때 그것은 그 사람들만 핍박한 것이 아니라 나도 핍박한 것이다. 나를 믿는 사람들은 곧 나의 지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울은 주님이 그에게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하고 말씀했던 이유를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 본 적이 없고, 그의 동료들이 그를 붙잡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에도 예루살렘에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결코 예수님 박해에 가담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가 주님의 지체인 교회를 핍박했기에 주님을 핍박한 것이 됐다. 사도 바오로는 마음속에 박혀 있는 그 두 개의 가시를 결코 제거할 수 없었다.

   죄인이라 고백 

   그는 자기 서간들에서 여러 번 그 사실을 언급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갈라 1,13).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1티모 1,13).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1코린 15,9).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1티모 1,15).

 생애 마지막까지 그가 이처럼 느끼고 공공연하게 고백한 것을 보면, 수많은 아픔과 비탄의 뜨거운 눈물로 주님 사도 하나니아스 앞에서도 그러한 고백을 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하나니아스는 다마스쿠스의 1대 주교가 됐다고 전해진다).

 단지 그뿐만이 아니다. 그때까지 그의 삶 속에서 자라 온 정신이 뿌리째 뽑히고, 삶의 새로운 원칙들을 그 안에 심어야 했을 때, 그러한 거듭남은 시간과 마음의 진정과 신중함, 과거 잘못된 믿음의 반성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이후 바오로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생각을 포로로 잡아 그리스도께 순종시킵니다"(2코린 10,5). 그리고 마침내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고 말했다. 그 모든 것 안에서 "새 인간"(에



가톨릭평화신문  201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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