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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100주년 특별기획 - 다시 읽는 드망즈 주교 일기] (45) 1936년 7월 14일~12월 31일

변화의 시기에도 한결같은 소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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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계속될 것인가? 상관없다. 하느님이 내게 정하신 그때까지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다.”



1936년 드망즈 주교의 일기에서는 재미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얼마 전만해도 사목방문 당시 말을 타고 다녔던 그가, 자동차를 통해 각 지역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사진은 드망즈 주교가 타고 다녔던 자동차의 모습을 남겨 놓았다.

또 한 신부가 공산주의자들과 타협했다는 부분도 등장하는데, 당시 공산주의자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 격변의 바람이 이미 우리나라에 불어왔고, 또 앞으로 불어올 것이라고 예감할 수 있다. 이러한 격변의 시기에도 드망즈 주교는 한 해를 마감하며 ‘하느님이 내게 정하신 그때까지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다’라고 꾸준한 신앙고백을 계속한다.



1936년 7월 14일~11월 9일

야고보를 위해 나의 소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그의 많은 가족들이 참석하고 영성체를 했다. 그는 바로 25년 전 복사로 들어왔는데, 그 이후로 그는 일을 지혜롭게, 또 헌신적으로 이행했다. 그의 가족을 위해 한마디 기념되는 말과 함께 틀에 잘 넣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10월 26일, 9시 송대를 떠나 11시45분 도착했다(왕복 40원이 들었다). 김양홍 스테파노 신부가 현재 공산주의자들과 타협하고 있는 어느 한 신부의 행동으로 인한 어려움을 설명하러 와 있었다.

11월 3일, 모든 사목방문 기간 동안 나를 태우고 다닐 자동차가 오전 8시30분 동굴 앞 광장에 와 있었다. 나를 태우고 1시간 45분 동안 52km를 달려 창녕읍에 도착하니 루카 신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47명의 견진자. 점심식사 후 오후 2시30분 합천으로 출발했다(고령 전에 있는 다리를 건너기 위해 올라 가야하는 다리가 파괴돼 우회해 67km를 가야했기 때문이다).

4일, 견진성사. 유흥모 안드레아 신부를 데리고 10시 기장에 도착하기 위해 8시30분 출발했다. 43명의 견진성사. 기장에 유 신부를 남겨두고, 2시30분 함양으로 출발, 1시간 15분 걸려 36km를 갔다(드망즈 주교는 함양에서 108명, 진주에서 168명, 문산에서 63명, 방목에서 141명 등 총 412km를 돌아보며 727명에게 견진성사를 주었다고 거리와 견진 대상자 수를 자세히 적는다).


 
▲ 사목방문 중 차에서 내린 드망즈 주교 일행(1936년 11월 3일).
 

 
▲ 문산성당(현 마산교구 진주 문산성당) 견진성사 후 기념촬영(1936년 11월 7일). 성당은 이듬해 축복식을 가졌다.
 

 
▲ 영천 순교자의모후성당(현 대구대교구 영천성당) 봉헌식 기념촬영(1936.10).
영천성당은 프랑스 출신 사제 주도로 세워진 다른 성당과 달리 스위스 출신 프르와드보 신부에 의해 세워져 당시로서는 색다른 느낌을 줬다.
 

 
▲ 드망즈 주교가 용평(현 경북 영천시 화산면 용평리로 추정) 사목방문 중 촬영된 보리타작하는 아낙네들과 외국인 선교사제의 모습(1936년).
용평본당은 이듬해 영천본당 공소로 편입된 후 현재 신녕본당 소속 화산공소로 변경됐다.
 
가톨릭신문  201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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