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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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7>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며, 지혜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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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
그림=정미연

   "할 말이 많은 자는 오랜 침묵에 잠겨야 하고, 번갯불을 당기려는 자는 많은 구름을 모아야 한다."

 심오한 영적 삶을 사는 사람은 자기 영혼의 비밀을 쉽게 털어 놓지 않는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아라비아 사막에서 보낸 3년 동안의 생활에 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막에서 보낸 삶 이후 행적이나 14편에 달하는 서간들을 통해 남긴 가르침으로 미뤄보면, 어느 정도는 그의 삶을 유추해볼 수 있다.

   율법은 밀알의 겨 같은 존재

 이제부터 그가 피신했던 암석의 아라비아 고산 지대로 바오로를 만나러 가 보기로 하자. 이곳에 사는 아랍 베두인들은 유목생활을 하며 천막에서 지낸다. 어느 여행자의 글에서 보이듯이 아라비아는 `동방의 다른 어느 곳보다 천막제조업이 성행`했는데, 이는 광야에 사는 수천 유목민의 천막을 공급해 줘야만 했기 때문이다.

 베두인들은 천막제조업자들에게 염소 털을 팔았다. 처음에는 그 털로 굵은 줄 뭉치를 만들었으며 후에는 그것들로 햇빛이나 비를 차단할 수 있는 천을 짰다. 이렇게 만든 천막으로 광야 유목민들은 이동주택인 천막을 세웠다. 고향 타르수스에서 천막 제조기술을 배운 바오로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생 그러했듯이 그 지방 천막제조업자를 찾아가 동업을 요청했을 것이다. 동시에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암시한 것처럼, 이곳에서 바오로의 영혼은 성령의 빛을 통해 높이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필리 3,7-8).

 이제야 그는 자신이 절대적 가치를 뒀던 율법이 밀알의 겨 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러한 껍질이 쓸모없이 붙어있는 것은 아니다. 낟알이 다 영글 때까지 보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낟알이 영글면 타작꾼은 낟알 껍질을 벗겨낸다.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껍질은 내버려두고 낟알만 취한다.

 율법도 이와 같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고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졌기에 처음에는 유용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와서 우리는 그를 믿고 그와 한 몸이 되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며 그의 온전한 율법과 요구를 따르게 됐기에, 다양한 명령을 가진 율법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종말을 맞게 됐다. 우리가 주님 은총 속에 사는 순간부터 율법은 스스로 힘을 잃는다. 바오로는 후에 이러한 생각들을 그의 서간들을 통해, 특히 로마서에서 펼쳐낸다.

 바리사이식 교육을 받은 바오로가 몰두했던 또 다른 주제는 예루살렘 교회의 절대적 가치에 관한 것이다. 대부제 스테파노의 유죄선고에서처럼, 유다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유죄선고에서도 위증자들 고발보다 더 무거운 죄는 그들 성전을 모독하는 언사를 했다는 것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사도 6,14, 마태 26,61 참조).

 이제 바오로는 그 유명한 예루살렘 성전과 그보다 앞서 하느님 계명에 따라 모세가 만들었던 증거의 장막은 상징적 성격을 가졌고, 그리스도를 예견하여 묘사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온전히 충만한 신성이 육신의 형태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콜로 2,9). 그러므로 주님은 유다인들에게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고 말씀했다. 여기서 성전은 주님의 몸을 뜻하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복음사가 요한은 설명하고 있다(요한 2,21-22 참조).
 

 
▲ 작가 노트=유다인들은 그들의 해방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수치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그리스도에게 유다인들은 등을 돌리고 손가락질한다.
바오로 사도는 메시아에 관한 히브리인들의 잘못된 생각을 제거해야 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크신 사랑과 부활은 믿음의 두 축을 이룬다.
복음의 모든 핵심은 그것이라는 점을 드러내봤다.
 

   하느님의 하늘과 땅의 주님

 후에 바오로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증거의 장막과 제물들, 성전과 관계된 모든 것들은 천상의 실체를 상징하며(히브 9,23 참조), 또한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히브 10,1)라고 명료하게 밝혔다. 또한 아레오파고스에서 아테네인들에게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사도 17,24)하고 선포했다.

 바오로 마음속에서 분명하게 하고자 했던 세 번째 주제는 그리스도를 `유다인의 걸림돌`(1코린 1,23)로 특징 지은 것이다. 유다인들은 메시아, 구원자, 그들의 해방자인 그리스도가 죄수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수모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들을 때마다 분개했다. 라삐들, 서기관들, 바리사이 율법사들도 예언자들을 잘못 해석했고, 그래서 메시아 그리스도는 강력한 왕으로 오시며 이스라엘 백성의 적을 참패시키고 로마 압제자들에게서 해방시키고 시온산에 그분의 보좌를 세우고 그곳으로부터 온 세상을 통치할 것이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모든 사람들뿐 아니라 주님 제자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가야만 하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가톨릭평화신문  201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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