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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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15> 제2차 선교여행

필리피 리디아 가족 세례, 유럽 첫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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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노트 = 나는 바오로 사도의 선교지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사도의 2차 선교 여행을 가슴으로 느꼈다.
사도께서 선교여행을 했던 아름다운 네아폴리스 항구에 서니 시공을 초월해 그의 열정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필리피 거대한 폐허 속 유적지 위에 첫 번째 가정교회가 된 리디아의 집을 표현해 봤다.
 

사도 바오로와 바르나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안티오키아 교회 신자들을 이끌었고, 세례성사를 받고나서 교회에 나오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쳤다.

 그러나 바오로는 항상 머나먼 서방으로 자신을 이끄는 강력한 힘을 느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보다시피 그의 열망은 제국 수도 로마에까지 도달했다(로마 1,10-13 참조). 동시에 그는 바르나바와 첫 번째 선교여행 중에 세운 교회들의 대한 문제에 몰두했다.

   #동행자로 실라스를 선택

 그래서 하루는 바르나바에게 말했다. "바오로가 바르나바에게, `자,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한 모든 고을로 형제들을 찾아가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살펴봅시다`하고 말하였다"(사도 15,36). 그들이 믿음을 지키고 신앙에 따라 사는지를 살펴보고 영신적 삶에 의존하며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때 바르나바는 마르코라고 불리는 요한도 데리고 가려 했다.

 그러나 바오로는 그가 팜필리아 페르게에서 사도들과 협력하기를 중단했기에 그를 데리고 가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바르나바는 마르코와 함께 바르나바의 고향인 키프로스로 가서 그들의 첫 번째 선교 여행 때 시작했던 복음사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리고 바오로는 자신의 동행자로 실라스를 선택한다. 실라스는 예루살렘 교회의 뛰어난 일원이었으며, 바르사빠스라고 하는 유다와 함께 안티오키아 교회에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결정을 담은 편지를 전달하도록 택함을 받은 사람이었다(사도 15,22 참조). 그때부터 실라스는 사도들과 함께 머물며 안티오키아에서 선교일을 했다.

 주후 49년 3월 교회의 축복을 받으며 바오로는 동행자 실라스와 함께 북부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모든 교회들을 방문하고자 육로로 출발했다. 현재의 터키 중남부 도시 아다나를 지나 바오로가 태어나 자라났던 타르수스에 도착했다.

 바오로는 지난번 여행에서 이 지역에 있는 모든 도시들을 알게 됐다(갈라 1,21 참조). 이 모든 곳에서 사도들은 그리스도 교회 형제들 곁에 잠깐씩만 머물렀으며, 예루살렘 사도회의 결정을 알려줬다. 사도회의에서 히브리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믿음과 같은 사랑 속에서 하나로 합쳐지고 성체를 함께 향유하고 같은 성배로 성혈을 나누도록 허용했음을 알렸다.

 이어 데르베를 거쳐 사도들은 리스트라에 도착했다. 이곳에 모두가 칭찬하는 티모테오라는 훌륭한 청년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우상숭배자로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어머니 에우니케와 할머니 로이스는 유다인으로 진실한 믿음 가운데서 아들을 양육했다. 바오로는 전에 리스트라를 방문했을 때 만난 티모테오를 특별히 높게 평가했다. 그래서 이번 선교여행에 티모테오가 자신과 동행해 주기를 청했다. 에우니케와 로이스는 티모테오가 그들의 유일한 가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요청을 영광으로 받아들였다.

   #제3의 훌륭한 협력자 루카

 이 외로운 두 여인의 진정한 봉헌은 그리스도교회에 봉헌된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희생임이 분명하다. 티모테오는 이별의 아픔이 있을지라도 열정적으로 바오로를 따라 나섰고 마지막까지 그의 곁에 함께 있었다.

 후에 바오로는 로마 감옥에서 티모테오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여러분의 일을 성심껏 돌보아 줄 사람이 나에게는 티모테오밖에 없습니다.… 그가 나와 함께 마치 자식과 아버지처럼 복음을 위하여 일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필리 2,20-22).

 성령의 인도로(사도 16,6-8 참조) 바오로는 두 동행자와 함께 트로아스에 도착했고, 거기에서 그의 제3의 훌륭한 협력자가 될 의사 루카가 가담했다. 이제부터는 직접 목격한 증인으로서 루카가 사도행전을 통해 대사도 바오로의 행적을 처음부터 로마 감옥에 갇힐 때까지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어느 날 밤 바오로에게 하나의 환영이 보였다. 한 마케도니아인이 그에게 간청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사도 16,9).

 바오로는 이것을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 부르심으로 여겼다. 그래서 배를 구하자 곧바로 사모트라케 섬으로 직행했다. 다음 날 네아폴리스 항구에서 하선했다. 거기에서 카발라를 경유해 필리피로 옮겨갔다. 필리피는 마케도니아 외곽에 있는 도시로, 가장 중요한 로마 식민지였다.

 필리피에는 유다인 회당이 없었다. 그렇지만 바오로는 곧 몇몇 유다인들이 토요일마다 강둑으로 기도하러 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는 일행들과 함께 그곳에 도착한 후 첫 번째 안식일에 기도처로 갔고 그곳에 왔던 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기도처에 모인 여인들 가운데 잘 차려입은 한 여인이 특별한 종교적 관심을 보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소아시아 티아티라 출신인 그의 이름은 리디아였다. 붉은 색 물감을 들인 값비싼 자색 옷감을 팔았던(사도 16,14 참조) 리디아는 원래 이교도 출신 우상숭배자였지만 마케도니아에 이주해 살고 있던 유다인들과 친해지면서 하느님을 믿기 시작해 하느님을 공경하며 섬기고 있었다. 주님은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을 듣는 시간에 그의 마음을 열었고, 구세주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것을 경청하며 믿게 된 리디아는 세례 받기를 원했다.

 교회사와 전승에 따르면, 첫 번째 유럽 여인이 필리피 앙키스타 강물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 그 날이 바로 토요일 밤이라고 알려져 있다. 리디아는 온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았고, 이로써



가톨릭평화신문  201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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