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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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을 말한다] 제1화 (2) 성당의 공간: 장소와 빛

김광현(안드레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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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니메의 산 토마소 성당.
 

 
▲ 실바칸느의 시토회 성당.
 


하늘에 닿아 있고 천사가 오르내리는 곳

   신앙 선조가 순교의 피를 흘린 해미읍성의 처형 장소는 그 근처 어떤 땅과도 같을 수 없다. 그곳은 거룩하게 구별된 땅이다. 하느님과 관련된 거룩한 땅,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의 배경이 된 장소를 성지라 부르듯 거룩한 집, 성당은 성별(聖別)된 장소에만 세워진다. 의식과 제구라는 대상, 사제라는 사람, 주일이라는 시간을 따로 구분하듯 성당은 거룩하게 선별된 장소 위에 세워진다. 그리고 장소는 벽으로 둘러싸일 때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견고한 벽은 세속과 거룩한 것을 격리시켜준다.

 고대 그리스 신전은 도시와 떨어진 언덕 위에 서 있어서 멀리서 바라보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성당은 구별해 지어진 하느님의 장소이면서 우리가 매일 살아가고 있는 세상 안에 세워졌다. 때문에 그리스도교 성당의 벽은 다른 세속적 건물의 벽과 다르다. 성당의 벽은 세속과 구별된 거룩한 장소를 만들어낸다. 그 벽은 바깥으로는 인간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안으로는 빛을 가득 채워 하느님 나라를 표현해야 했다.

 `하느님의 집`인 성당을 제일 처음 세운 사람은 야곱이었다. 야곱은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부어 `이곳`을 거룩한 장소로 주위와 격리시켰다.

 "야곱은…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야곱은 …베었던 돌을 가져다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창세 28,10-22).

 여기에서 `이곳`은 매우 중요한 말이다. 이곳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곳이고, 그래서 두려운 곳이다. 이곳은 하늘에 닿아 있고 층계로 하느님의 천사가 오르내리는 곳이다. 수직으로 세운 돌은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 곧 거룩한 세계로 이르는 길, 상승과 초월을 나타냈다. 이처럼 야곱이 꿈꾼 계단은 이 땅과 하늘을 결합하는 문이자, 세계축(axis mundi)이었다.

 빛은 벽 안에 있는 하느님 나라를 드러낸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했다.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시편 36,10). 하느님께서 만드신 빛을 통해 생명의 원천이신 `빛`을 본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빛은 형상이 있는 것과 형상이 없는 것을 이어주는 매개자"라고 했다. 성당 안의 모든 구조는 이러한 빛을 위해 존재한다. 고딕 건축 공간이 모든 건축물 중에서 특별히 거룩한 공간을 실현하고 있는 것은 엄청난 높이와 튼튼한 열주가 아니라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리미네 산 토마소 성당(San Tomaso, 12세기)은 원통형 벽면으로 장소를 끊어내고 그 위에 기둥을 뒀다. 그 위에 아치를 튼 다음 돔을 얹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벽과 아치와 기둥, 그리고 돔이라는 당시 몇 안 되는 구조 방식으로 하늘을 향하고자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리고 저 위에서는 빛이 비춰 들어와 공간 전체를 가득 채워준다. 아래 원형 벽은 사람을 에워싸고, 꼭대기 돔은 하느님이 만드신 하늘이 된다. 이렇게 장소와 빛이 성당을 소박하게 완성해냈다.

 실바칸느 시토회 성당을 보라. 성당 내부 공간을 통합하는 것은 빛이다. 아니, 빛이 성당 공간 전체가 된다. 성당 저 높은 창에서 또는 한가운데 돔에서 조용히 쏟아 내리는 빛이 천장, 벽, 기둥 그리고 오목 볼록한 모양을 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세부에 부딪히고 꺾이면서 부드럽게 빛나는 공기처럼 공간을 가득 채운다. 돌의 육중함은 사라지고 부드러운 천처럼 느끼게 하는 빛, 그 빛은 돌만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비춰준다. 이 성당의 벽면은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5.9)는 성경 말씀을 물질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런 성당에서 벽으로 둘러싸인 우리는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다. 우리가 부르는 성가는 벽으로 구분된 거룩한 장소 안에 울려 퍼진다. 사제는 제물을 준비할 때 성반과 성작을 들어 올리며 저 높은 돔을 향해 기도드린다. 그리고 사제는 피조물인 인간의 머리를 향해 손을 들어 `저 위에` 계신 하느님께서 축복하시기를 기도드린다. 그러면 돔을 통해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빛이 우리 모두를 감싸 안는다. 그렇게 해서 높은 돔과 거기서 내리비추는 빛은 야곱이 보았던 `하늘에 닿아 있는 층계`이며,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곳`이 된다. 성당 내부의 높고도 빈 공간과 빛은 바로 야곱이 세운 기념 기둥을 형상화한 것이다. 건축물은 이렇게 우리가 드리는 미사 전례에 동참한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임을 새겨준다. 이것이 성당이다.

 성당 안을 비추는 빛은 한 부분만 밝게 비춰서는 안 된다. 그 빛은 공간을 가득 채우는 빛이어야 한다. 그 안에서 기도드리는 우리 `모두`를 감싸줘야 한다. 그리고 그 빛은 성당 안에 들어섰을 때 약간 어둡게 보여야 한다. 숨을 고르고 조용히 조금만 앉아 있으면 그 안이 밝게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어둠에서 빛을 향해 가는 존재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빛이란 단지 밝기나 조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라면 형광등을 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벽과 지붕을 크게 뚫어 밝기만 한 성당이 아니다. 검소하고 작은 성당이라도 아침에 비치는 투명한 빛이 미사가



가톨릭평화신문  201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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