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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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을 말한다] 제2화 ⑵ 한국 성당건축Ⅱ : 1960년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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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돌의 화려한 부활을 가져온 마산 양덕동성당.
 

 
▲ 포물선 형태 평면과 함께 초가집을 연상시키는 조형언어가 철근 콘크리트로 구현된 절두산 순교성지 성당.
 
 
  1945년 해방을 기해 우리는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확보했다. 대한제국기에 이미 종교의 자유를 획득했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우리 종교에는 일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기에 해방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곧 이은 6ㆍ25전쟁은 남북의 교회건축 모습을 다르게 만들었다. 북에서는 교회를 볼 수 없게 됐고, 남에서는 더 이상 벽돌교회와 한옥교회가 지어지지 않았다. 물론 전쟁이 바꿔놓은 남북 교회건축의 지형은 같은 선상에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오늘날 교회건축의 근간이 됐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전후 남한 사회는 전쟁 상처를 극복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고 교회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교인들은 각박한 삶 속에서도 교회 재건에 나섰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해방 전에 사용했던 벽돌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화강석이었다. 돌은 이 땅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건축 재료였지만 우리 역사에서 사람 사는 집에 주인으로 사용된 적이 없었다.

   선교사와 건축가 박동진에 의해 건축에 사용된 적은 있었지만, 일반화되지는 않았다. 돌의 매력적 물성에도 불구하고 기술력과 경제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은 돌로 지은 교회건축을 보편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교회를 재건하려는 교인들이 하나로 뭉쳤고, 여기에 군인들 지원이 더해졌다. 군인들은 인근 채석장에서 돌을 운반해줬고, 교인들은 힘을 모아 하나씩 돌을 다듬고 쌓아서 교회를 만들었다.

 물론 돌로 짓는 교회 모델은 해방 전 벽돌 교회건축이었다. 그래서 재료는 바뀌었지만 돌교회는 해방 전 벽돌교회를 닮았다. 미1군단 도움으로 지은 의정부성당(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9호)이 대표적 예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상황에서 구하기 어려운 공장생산 벽돌을 대신해 예전에는 사용하기 어려웠던 돌이 오히려 군인과 교인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공장 없이 생산할 수 있는 건축 재료로 선택돼 교회건축으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교회건축의 현대적 변화는 혜화동성당에서 시작됐다. 건축가 이희태는 혜화동성당에서 바실리카식 교회에서 탈피한 현대 교회를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절두산성당에서는 전통건축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교회건축도 만들어냈다. 두 성당에서의 새로운 시도는 1962년 개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온 교회 변화와 쇄신에 잘 부합하면서 교회건축의 새 흐름을 만들어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미사예식 간소화, 기도서와 교리서 개혁, 평신도사도직 활동의 다양화와 사회 참여의식 등을 고조시켜 가톨릭교회가 현대화된 교회로 전환하는 계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절두산성지에 지어진 성당에는 포물선 형태의 독특한 평면과 함께 초가집을 연상시키는 조형언어가 철근 콘크리트로 구현됐다. 이밖에 1960년대에는 청주 내덕동성당(제임스 파비 주교 작), 수원 서둔동성당(윤장섭 작) 등에서도 전통 건축을 현대화한 작업이 있었는데, 복고풍의 포스트모더니즘이 1980년대에 등장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도 교회의 토착화 시도가 내부에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1960년대 교회건축은 모더니즘의 강한 흐름 속에 있었다. 나상진의 후암동성당(1964년) 역시 이희태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근대 건축가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두 건축가 모두 콘크리트 구조를 드러내는 한편으로 벽돌을 외장재로 사용하고 있고, 내부는 기둥이 없는 장방형 공간으로 구성했다. 연희동성당(김재철 작)은 현대적 감각의 성당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실리카식 성당 외관과 가우디를 연상시키는 곡선의 미학을 갖고 있다.

 삼각형의 부정형 대지에 세워진 정릉동성당(김현석 작)은 불리한 대지 조건을 현대적 조형언어로 해석해내면서도 방주 이미지를 구현한 작품이다. 이밖에도 외국인 신부에 의해 지어진 서울 도림동성당(요셉 수아레즈 신부 작), 경북 왜관성당(알빈 신부 작)은 현대 교회건축의 다양성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내덕동성당은 전통건축 양식에 기하학적으로 변용된 고딕의 볼트 디자인을 사용함으로써 독특한 한ㆍ양 절충형 성당을 만들어냈다. 1960~70년대 전반기까지는 현대 교회건축의 모색기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시도가 있었는데, 이러한 흐름의 정점에 마산 양덕동성당(김수근 작, 1978년)이 있다.

 양덕동성당은 현대건축이지만 기단(基壇)과 벽체, 그리고 지붕이 일체화된 건물이 부정형으로 분할된 묵직한 형태는 로마네스크 건축을, 철근 콘크리트 골조가 노출된 천장은 고딕성당을 연상시킨다. 특히 넓은 대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도시에서 경사로를 따라 묵직한 건물을 돌아오르다 보면 어느덧 세속에서 벗어나 성스러움의 영역에 다다르게 된다.

 이 같은 공간 해석은 교리를 직설적으로 해석한 바실리카식 성당과 다르고, 현대 교회건축의 시작인 혜화동성당과도 다르다. 김수근은 바실리카식 성당과 달리 현대 교회건축에서 사라진 축성을 진입공간에 도입했는데, 이는 사찰 진입 축의 도시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시기에 세워진 서울 한강성당(김원 작)은 번잡한 도시 속에서 사제관 및 수녀원, 유치원 등을 연속된 건물로 해결함으로써 도시



가톨릭평화신문  2012-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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