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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성경주해] (174)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4 복음 선포자의 희망과 기쁨과 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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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1테살 2,19-20】

“우리 주 예수님의 재림 때에 누가 과연 그분 앞에서 우리의 희망과 기쁨과 자랑스러운 화관이 되겠습니까? 바로 여러분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야말로 우리의 영광이며 기쁨입니다.”



복음 선포자의 영광과 기쁨은 듣는 이들이 기꺼이 믿고 고난을 견뎌낼 태세가 되는 데 있다.

설교자의 희망과 기쁨과 화관

… 그러면 그들은 그대가 누구를 본받기 바랍니까? 망설였던 사람, 예수님을 따르고 싶지만, 가족 때문에 결심을 미루다 예수님께 훈계를 들은 사람(루카 9,61 참조)입니까? 아니면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갈라 1,6)라고 한 복된 바오로 사도입니까?

그는 “사실 나는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1코린 15,9)라고 했지만, 자기가 받은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주신 분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았기에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라고 썼습니다.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이라고 말한 그는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가운데 그의 기쁨이요 화관인 개종자들을 얻었습니다. ….(아타나시우스 『드라콘티우스에게 보낸 편지』 49,4)

이웃의 안녕이 우리의 참된 화관이다

이웃의 안녕을 자신의 유익으로 여기지 않는 이는 화관을 얻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서로 묶인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자는 아이를 깨워 그에게 형을 따라가라고 하면 안 따라가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이 형의 손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쥐여 준 다음 아이에게 형을 따라가라고 하면, 아이는 그 물건을 얻으려고 형을 따라갈 것입니다.

이와 똑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갈라지지 않고 서로 따라다니도록 우리의 유익을 우리 이웃의 손에 쥐여 주셨습니다. … 나의 유익이 당신에게 달려 있고 당신의 유익이 나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기꺼워하시는 것들을 배우는 것은 한편으로는 당신의 이익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받으려고 나에게 달려오지 않을 수 없도록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그것들을 내게 맡기셨습니다. 당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또 한편으로는 나의 유익입니다. 그 때문에 내가 받게 될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대에게 달렸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그 덕분에 내가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나는 당신을 따라다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우리 주 예수님의 재림 때에 누가 과연 그분 앞에서 우리의 희망과 기쁨과 자랑스러운 화관이 되겠습니까? 바로 여러분 아니겠습니까?”라고 한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코린토 1서 강해』 33,3)

훌륭한 교사는 제자의 진보를 모든 희망과 기쁨과 자랑스러운 화관으로 삼는 사람입니다.(펠라기우스 『테살로니카 1서 주해』)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로마 12,1) 여러분께 부탁하건대, 부디 여러분이 희망을 갖고 뽑은 이를 여러분의 기도로 도와주십시오. … 여러분이 꾸준히 구원을 향해 나아갈 때 제 영혼은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할 것입니다(루카 1,46 참조). 의로우신 재판관 앞에서, 제 사제직의 결산이 이루어질 장차 올 보상의 심판 때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선행을 통하여 저의 ‘기쁨’과 “자랑스러운 화관”(필리 4,1도 참조)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여러분의 선한 의지로 현세에 관하여 진실한 증언을 하였습니다.(대 레오 『설교집』 1,2)


노성기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광주가톨릭대학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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