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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성경주해] (220) 창세기 12,1

하느님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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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는 창세기에 대한 교부들의 성경주해를 살펴보도록 하자.



【 성경본문 : 창세 12,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안토니우스는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이주는 영적인 여행을 떠나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고 말한다. 이 같은 해석은 필론 때부터 시작된 우의적인 해석이다.

부르심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던 아브라함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떠났습니다. 이는 이런 삶의 방식이 시작되는 본보기입니다. 이런 본은 이런 양식을 따르는 이들 안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혼이 인내하며 이런 삶의 방식에 뜻을 굽히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나 그들은 쉽게 덕에 이릅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느님 성령의 인도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대 안토니우스 「편지」 1).

아브라함이 떠난 이유

장님 디디무스는 고향을 떠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과도 연관지어 설명한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족을 떠나라고 지시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서 당신의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 곧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사악한 사람들(아브라함의 아버지는 실상 우상 숭배자였습니다) 가운데에 사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악인의 무리는 열성적인 사람들, 특히 열성의 길로 지금 막 들어선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구원자께서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를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참조: 마태 16,24)라고 하신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이 친족을 미워하게 만드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그가 덕에 이르는 데 방해가 된다면 덕을 위해 차라리 그를 미워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 10,28 마태 19,27 참조)라고 말한 사도가 바로 이렇게 했습니다. …(장님 디디무스 「창세기 주해」 209).

아브라함은 정신을 상징한다

암브로시우스는 아브라함을 ‘정욕을 버리라는 명령을 받는 정신’으로 해석한다. 이런 해석은 필론의 우의적인 해석의 영향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정신을 나타냅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옮겨감’을 뜻합니다. 아담 안에서 자신을 쾌락과 육체적 유혹에 빠지도록 두었던 정신이 덕의 이상적인 형태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본받을 지혜로운 사람이 본보기로 주어진 것입니다. 실제로 히브리어로 ‘아브라함’은 ‘아버지’를 뜻합니다. 정신이 아버지의 권위와 판단과 염려로 그 사람 전체를 다스린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이 정신이 그때는 하란, 곧 다른 열정들에 종속되어 있는 동굴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네 고향”, 곧 네 몸으로부터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본향이 하늘에 있는 그 사람이 그 땅으로부터 떠났습니다.(암브로시우스 「아브라함」 2,1-2)


노성기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총장·한국교부학연구회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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