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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성경주해] (229) 창세기 18,1-2

세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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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창세 18,1-2 】 "주님께서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 그가 눈을 들어 보니 자기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



“주님께서 나타나셨다”는 문장은, 인간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대면하게 만든다. 그래서 교부들은, 아브라함이 세 방문자 가운데 한 사람에게만 “나리” 하고 부른 것처럼 보이는 창세기 18장 3절에 근거해, 세 방문자를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혹은 삼위일체의 상징이나 예표로 또는 천사로 간주하기도 했다.

삼위일체의 예형을 본 아브라함

나그네들을 반가이 맞고, 하느님께 충실하며 그 섬김에 지칠 줄 모르고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는 데 기민한 아브라함은 삼위일체의 예형을 보았습니다. 그는 환대만 한 것이 아니라 깊은 신심까지 보여 주었습니다. 세 사람을 보았지만 한 분께만 경배했으며, 셋을 구별하면서도 한 분만 주님으로 부름으로써 세 사람을 높이면서도 하나의 권능만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아니라 은총이 그의 안에서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가 배우지 않은 것을 배운 우리보다 더 제대로 믿었습니다. 진리의 예형을 조금도 왜곡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 사람을 보았지만 그들의 일치를 경배했습니다. 그는 빵은 세 분량을 내왔지만 제사는 한 번이면 족하다 믿었기에 송아지는 한 마리만 잡았습니다. 희생 제물은 하나지만 예물은 셋이었습니다(암브로시우스 「동생 사티루스의 죽음」 2,96).

하느님께서 또 다시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에서 세 사람의 형상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이 천사였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주 그리스도였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분께서 육의 옷을 입기 전에도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나셨다고 주장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그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로 사멸할 자들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것은 신적 권능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비가시적이고 비육체적이며 불변하는 본성의 소산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16,29).

“마므레의 참나무”의 어원을 풀이하면 ‘환시’를 뜻한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원칙을 사용하여 이 개념을 ‘마음이 깨끗한 이들은 하느님을 뵙게 되리라고 약속하는 참행복 선언’과 연결시킬 수 있다.

마므레의 참나무

아브라함이 그 아래 서 있었고 주님과 천사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던 이 나무가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성경에는 “마므레의 나무 곁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므레”는 우리의 언어로는 ‘시력’ 또는 ‘날카로운 시각’으로 번역됩니다. 주님께서 식사를 하실 수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아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시력과 날카로운 시각이 주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깨끗하여 하느님을 볼 수 있었기(마태 5,8 참조) 때문입니다. 그런즉 이런 곳, 이런 마음 안에서는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들과 식사를 하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옛 시대의 예언자들은 ‘보는 이’로 불렸습니다(1사무 9,9 참조)(오리게네스 「창세기 강해」 4,3).


노성기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총장·한국교부학연구회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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