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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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길 가톨릭 인본주의상'' 제1회 수상자 박용건씨(성가복지병원 내과과장)

''강남 의사'' 명패 대신 ''무료병원 과장'' 13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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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건 과장은 "나는 신문에 나올만한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면서 "상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임영선 기자
 
 3년 전 어느 겨울날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한 버스정류장. 진료를 마치고 퇴근하던 성가복지병원 박용건(폰시아노, 65) 내과과장은 정류장 한 귀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한 사내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였다. 오랫동안 씻지 못해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술을 많이 마셨는지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추운데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어이구, 많이 마셨구먼. 여기서 이러고 앉아 있지 말고 어서 일어나요."

 박 과장은 사내의 어깨를 감싸 안고 일으켜 세웠다. 박 과장을 바라보던 사내는 "과장님 아니세요?" 하고 반색을 하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되뇌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박 과장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내는 박 과장의 손을 꼭 붙잡고 울먹이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길거리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한테 과장님 아니면 누가 말을 걸어주겠어요? 또 누가 저 같은 사람을 안아주겠어요? 고마워서 눈물이 나네요. 고맙습니다. 과장님."

 

 가톨릭대가 제정한 `이원길 가톨릭 인본주의상`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된 박용건 과장은 한때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제법 규모가 큰 개인 병원을 운영하던 `잘 나가는 내과의사`였다. 그랬던 그가 2001년, 모든 것을 정리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무료 병원인 성가복지병원 내과과장으로 부임해 13년째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인술(仁術)을 베풀며 살고 있다.

 13일 서울 성가복지병원 2층 소박한 진료실에서 만난 박 과장은 기자를 보자마자 "원장 수녀님께 `절대 나를 추천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아주 난처한 상황이 됐다"면서 "기사거리도 되지 않겠지만 굳이 기사를 낼 거면 아주 작게 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박 과장과 성가복지병원의 인연은 2000년 가을 시작됐다. 9년 동안 운영하던 개인병원을 확장하기로 결정한 그는 병원 인테리어를 하는 두 달여 동안 봉사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 어느날 주일 미사 참례해서 주보를 보는데 성가복지병원을 소개한 글이 눈에 띄었다. 노숙인, 가난한 무의탁인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병원이라고 했다. `여기다` 싶었다.

 하지만 두 달밖에 봉사를 못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두 달 동안 의료봉사를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당시 원장이었던 홍석임(서울 성가소비녀회) 수녀는 기쁜 목소리로 "오십시오!" 했다.

 10월 말 첫 진료를 했다. 정성을 다해 환자를 돌보는 그의 모습을 보고 병원에 근무하는 수녀들이 "이곳에 계속 계시면 어떻겠느냐"고 어렵게 부탁을 했다. 수녀들은 "병원에 몇 년 동안 내과 전문의가 없어 하느님께 의사를 보내달라고 많이 기도했다"고 말했다. 갈등이 시작됐다.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했지만

 "수녀님들 뜻은 잘 알았지만 굉장히 많이 망설였죠. 저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 꽤 많이 있었어요. 당시 딸 둘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죠. 아이들 공부도 시켜야 했고, 대학 등록금도 걱정이 됐죠. 시집도 보내야 하고요. 또 제가 도움을 주고 있는 이들이 몇 있었는데 이곳에서 근무하면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었어요."

 경제적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진료를 하며 만난 노숙인 환자들은 거칠었다. 대부분이 술에 취한 채 병원에 와 욕설을 하고 행패를 부렸다. 신변에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심지어 수녀들에게까지 심한 욕을 했다. `이 모든 난관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이곳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너무도 많았다. 그는 수녀들의 부탁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11월 30일. 한 수녀가 그에게 다가와 "선생님, 오늘 복음 말씀을 꼭 읽어보세요"라고 말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낚다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 말을 듣고 그물을 버리고 따라나선 이들의 이야기였다. 복음을 읽은 후 마음이 무거워졌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지금 운영하는 병원이 내가 가진 그물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당신이 기도를 해서 하느님께 응답을 청해 보라"고 부탁했다.

 박 과장의 고민을 들은 아내는 철야기도회를 갔다가 3일 만에 돌아왔다. 아내에게 "하느님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내는 "아무런 응답도 듣지 못했다"며 "다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고 말했다.

 "의사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돈 벌 거 다 벌고 갖출 거 다 갖춘 후에 봉사하려고 하면 그땐 당신이 너무 늙어 있을 것 같아요. 머리가 하얗게 센 의사가 `이제는 봉사활동이나 해볼까` 하는 것보다는 이왕 봉사할 거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조건 아내 뜻대로 하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기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이튿날 원장 수녀에게 "이 병원에서 근무하겠다"고 말했다. 막상 결정을 내리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박 과장은 "나는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일단 판단을 내리면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며 미소를 지었다.

 2003년 1월 그에게 `성가복지병원 내과과장`이라는 직함이 주어졌다. 오랫동안 이른바 `부자 동네`에 사는 이들을 진료하다가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을 진료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박 과장은 "환자는 다 똑같은 환자이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 힘든 점은 없었다"면서 "의사는 환자가 어떤 차림새를 하고 있든, 직업이 무엇이든, 성격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술이 잔뜩 취한 채로 찾아오는 환자가 많았어요. 저 사람이 아파서 저러는 거라고 생각하면 전혀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안쓰러운 마음이 들죠. 지금은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는 환자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어요. 병원을 오래 다니면서 좋게 변화되는 환자도 많아요."

 하느님이 주신 소명이라 생각하고 기쁘게 가난한 이들과 살아갔지만 종종 마음 아픈 일도 있었다. 박 과장을 아는 주위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봉사하겠다고 모든 걸 버리고 그 병원을 가느냐"는 조롱부터 "벌 만큼 벌고 먹고 살만 하니까 저런다"는 비아냥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개인 병원을 운영할 때 인연이 있었던 `단골 환자`들은 "두 달 후에 다시 보자"고 하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 박 과장을 비난했다.

 "전 병원에서 진료했던 환자들에게는 제



가톨릭평화신문  2013-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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