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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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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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온 제가 이렇게 억울하게 퇴직을 당하게 되다니요?" "공직생활로 바쁜 와중에도 본당에서 총구역장으로 하느님 사업을 열심히 해온 제가 이와 같이 허무하게 무너져야 합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새로운 2000년 시대가 열렸던 그해 12월! 직급 정년에 걸려 50대 초반의 나이로 강제 퇴직을 당했던 그날은 아마도 제 일생에서 결코 잊지 못할 가장 큰 아픈 사연으로 기억될 것 같다. 게다가 20년 전 해외 근무 당시 수술했던 허리 디스크가 재발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몸과 마음이 극도로 약해지다 보니 결국 정신적 강박증으로 연결돼 잠도 못자고,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게 됐고 급기야는 대학병원의 신경정신과 단골손님(?)이 되는 처지가 돼버렸다.
 
 "아, 이래서 사람이 죽게 되는가 보다."
 
 극단적 생각마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기도 하던 그 시절! 강제 퇴직 전 나의 진급을 방해했던 사람들에 대한 원한이 극도로 깊은 마음에 사무치면서 내가 나 자신을 도무지 통제할 수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외적인 갈등의 와중에도 나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나의 신앙적 마음이었다. 그동안 하느님 일을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을 해온 내가 "어떻게 축복은 고사하고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으니…!!
 
 1993년 8월 해외에서 귀국 후, 명일동본당에서 레지오와 함께 구역모임에 열심히 나가면서 나름대로 보람 있는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 이후 레지오 서기를 거쳐 단장까지 하게 됐고, 명일동 한양아파트 소공동체 구역모임에서도 총무를 거쳐 구역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당시 본당 신부님의 권유로 총구역장을 맡게 되면서 거의 흔적조차 없었던 남성 구역을 제대로 반석 위에 올려놓는 성과(?)를 이루게 됐다. 지금도 교중미사 중 신부님이 31개 전체 구역장 임명장을 주면서 전 신자들 앞에서 칭찬과 격려를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직장에서는 아주 열심히 근무한다는 엘리트 대우를 받고, 성당에서는 총구역장으로서 보람을 쌓아가고 있던 그 시절! 진급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고 기도 중 묵상에서도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영적 은총을 체험하기도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진급을 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으니…!! 밀려오는 심적 갈등과 배신감 비슷한 인간적 마음의 쇠사슬이 나를 억누르면서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돛대도 삿대도 없이 흔들리는 부표처럼 한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나도 나려니와 곁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 마틸다도 그렇게 열심히 하던 기도생활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완전 폐인이 돼 병원을 오가면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고 있던 저에게 하느님의 놀라운 새로운 태양의 빛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2001년 3월 지인의 권유로 서울 혜화동에 있는 가톨릭교리신학원에 입학하게 됐다. 당시 허리가 안 좋아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고, 마음 역시 갈피를 잡을 수도 없어 공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으나, 이상하게도 마음은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입학 후 허리에 좋다는 특수의자에 앉아 공부를 하면서도 강박증에 의한 정신적 압박감과 허리 통증으로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얼었던 마음을 근본적으로 녹이는 성경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창세 45,4-5). 형들의 시기를 받고 이집트에 팔려간 야곱의 늦둥이 아들인 요셉이 이집트에서 고관이 됐다가 식량을 구하러 온 형들을 만났으나, 원수를 갚지 않고 오히려 이를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무언가 뒤통수를 한방 얻어맞은 느낌이 들어왔다.
 
 직장에서 진급을 방해하고 나를 내쫓다시피 했던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면서 그동안 그들에게 품었던 원한이 눈이 녹듯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닌가! 비록 조금 이른 나이에 퇴직을 하긴 했으나 신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선교사로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하느님의 섭리가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서 샘물처럼 밀려오는 것 같았다. 바로 눈앞의 진급만을 생각하고 하느님을 원망해왔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면서 새로운 삶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녘에 해가 떠오르듯 새로운 삶의 희망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서서히 건강도 회복돼 몸과 마음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계속)



▲ 이계상 분도(서울 명일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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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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