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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방송·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가작 어떤 부르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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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 일요일이 됐습니다. 엄마는 성당에 가자고 했습니다. 나는 싫다고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불 꺼진 방안에 누워 있는 일뿐이었습니다. 성당에 갔다 온 엄마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허전함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뿌연 안개처럼 우리 집을 가득 메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누구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안개에 가려져 있던 구멍에 빠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제일 큰 공포는 이제 아빠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박탈감 같은 거였습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아빠의 몸이 나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살아오던 저에게는 더욱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제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허무감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아빠가 있는 데라는 결론이 난 것입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괴로움은 줄어들었고 마음도 편했습니다. 저는 슬슬 머릿속으로 정리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정했습니다. 아빠의 49일이 지나면 아빠와 함께하겠다고.

얼마 만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제 방에서 나왔습니다. 그러고는 오랜만에 안방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방에는 작은 상에 아빠의 사진, 향, 하얀 쌀밥 한 그릇이 놓여 있었습니다. 엄마가 아빠를 위해 매일 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아빠를 위한 일을 계속 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이때 저는 엄마의 감정을 한 번도 헤아려 주지 못했습니다. 철없게도 처음 빠져 본 죽음이라는 이별의 강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변명으로밖에는 들리지 않겠지만, 그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도 나와 같이 빠져 있었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알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엄마는 저에게 성당에 나가자고 했습니다. 나는 싫다고 했습니다. 그날 방에 누워 있는데 불현듯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아빠의 장지에서 돌아오던 날, 버스에서 저희 본당 연령회 부회장이라는 분이 다가왔습니다.

“따님은 성당 다니세요?”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냉담 푸시고 아빠를 위해 기도 열심히 하세요. 그러면….”

“아빠를 위해”라고 했던 그 말. 지금껏 멍하니 방에 있던 제가 할 일이 생긴 것입니다.

다음 주 일요일, 저는 엄마와 성당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기도라는 것을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책장에 의미 없이 꽂혀 있던 기도 책을 꺼내 봤습니다. 연령기도 책도 말이죠. 지겹다고 여겼던 기도였는데….

매일 같이 집에서 찬찬히 책을 보면서 연도를 바치고 묵주기도를 했습니다. 좋았습니다. 하느님께, 성모님께, 예수님께 기도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심한 감기에 걸려 성당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전 주에도 심한 기침 때문에 미사를 다하지 못하고 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혼자라도 가야 하나, 하고.

고민은 저녁까지 이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에서 해도 되는 거였는데 그때는 왠지 성당에 안 나가면 아빠를 위해 기도하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일 마지막 미사가 시작하는 저녁 7시에 집에서 나왔습니다.

미사가 시작한 지 10분이 지나서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미사가 끝난 40분 뒤 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이날 뽑은 그 말씀 사탕 때문입니다.

“몸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으로는 항상 함께 있습니다.” (계속)

이진아 율리안나

서울 미아동본당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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