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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방송·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가작 어떤 부르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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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아빠는 늘 함께였습니다. 쉴 새 없이 떠들고, 밥을 같이 먹고, 아빠의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주고, 산책하러 나갈 때 팔을 잡아주고, 부은 발을 씻겨 드리고….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아빠가 셀 수 없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사소했던 일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25년이라는 세월. 누구에게는 짧고 누구에게는 긴 시간이지만, 한 아빠의 딸인 제가 느끼기에는 너무도 짧다고 생각됐습니다. 아빠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치고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항상 함께 있답니다. 항상 함께….

수백 번도 더 아빠에게 질문을 던졌었습니다. 왜 나만 두고 혼자 가 버렸느냐고. 꿈에서라도 좋으니까 말 좀 해보라고 투정도 부렸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도 나름 찾은 저였습니다. 그랬는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아빠가 나한테 하는 말이야?

저는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정말 하느님이 존재하나요? 지금 저를 보고 있나요? 제 기도들을 들었나요? 죽으면 당신 옆에 있을 수 있다는데 그럼 아빠가 거기에 있나요? 여기서 받은 고통 따위는 하나도 느끼지 못한 채?

하늘은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밤하늘에 뜬 몇 개 없는 별들도, 흐릿하게 보이는 구름도, 저 멀리 떠 있는 달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제가 대답이라고 오해조차 할 수 없도록.

그러나 제 마음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도의 의미도 달라졌습니다. 아빠의 곁으로 가기 전에 하는 일이었던 기도는 제가 아빠의 곁에 있기 위한 것이 됐습니다. 아빠를 이제는 눈과 손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는 아빠가 잘 있는지 확인하는 해결의 책이었고, 아빠가 잘 있게 해 달라는 염원이 들은 말이었습니다. 물론 특별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귀에서 들리던 소리를 마음으로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연히 성당에 가는 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일주일은 길다 여겨지며 평일에도 갔습니다. 매일 성경의 구절이, 신부님의 말씀이 모두 저를 향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아빠와 소통하는 창구와도 같았습니다.

아빠를 잃었던 제가 다시 아빠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또 한 명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나를 부르신 하느님 아버지. 저를 성당으로 부른 이 말입니다.

하느님은 아빠의 죽음을 통해 저를 당신 옆으로 불렀습니다. 그리 달콤한 유혹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성당에 온 이유를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에서 울컥거리는 무언가 때문에.

한편으론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나도 평범한 부르심이었으면 더 좋았을걸. 사랑으로 시작하는 부르심이었으면 더 기뻤을걸. 눈물보다 웃음이 많은 부르심이었으면 더 행복했을걸.

그런데 성경에서 이런 구절을 보게 됐습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 3,1)

저도 압니다. 그 시기에 제게 가장 적절히 필요했던 것이 성당과 기도였다는 것을. 저를 부르기 위해 아빠의 죽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기에 이제는 성당에 어떻게 다니게 됐느냐는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이보다 조금 아프지만 특별하게 성당에 오게 됐다는 말을 시작으로. 그리고 그 말 안에는 저 홀로 성당을 다니고 기도한 것만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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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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