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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예수, 프란치스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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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하 매임 데레사 서울 시흥4동본당

“매임 데레사! 기도해줄 아이가 있어. 한번 가볼래?”

수녀님은 또 천진하고 아름다운 미소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어떻게 저 나이에 저렇게 아이 같은 표정이 나오실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수녀님 말씀에 저는 또 “네? 누군데요?”라고 순순히 응답하고 말았습니다.

지난번, 단장 임명 사건 때도 “데레사. 네가 나이가 제일 많으니까 단장해!!”라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저에게 단장을 떠넘기실 때도 그냥 “네” 하고 넘겼는데 말이죠. 제 나이 겨우 스물셋이었는데요. 돌아보면 수녀님은 미모를 가장한, 부드러운 리더십의 최고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하간 저는 수녀님께 물었습니다. “근데, 왜 제가 가야 해요? 수녀님.”

수녀님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저에게 되물으셨습니다. “너희 말고 기도하는 단체가 어딨어? 게다가 넌 단장이니까, 니가 가야지! 지금 가봐.”

저는 주소와 이름, 세례명을 받아들고 즉시 그 집으로 향했습니다. 수녀님 말씀이 맞았거든요. 저는 청년 레지오 마리애 단장이었습니다. 저희는 기도하는 단체이고, 기도로 활동하는 단체였으니까요. 성모님과 함께하는 묵주기도가 좋고, 기도를 바탕으로 봉사하는 게 좋아서 단장까지 수락했으니, 당연히 가는 게 맞는 거죠.

“우리 수녀님은 예쁜데 똑똑하기까지 해! 참 놀랍단 말이지!”

중얼중얼 찾아간 곳은 성당 바로 근처 아파트였습니다.

집 앞에 도착했지만, 선뜻 벨을 누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가수는 남자를 끌어당기는데 10분이면 된다는 노래를 불렀지만, 사실 저는 누군가와 친해지는데 5분이면 충분하다는 자신감으로 살아온 자타가 공인한 놀라운 친화력의 소유자였는데 말이죠. 여자아이였으면 더 편했을지 모르는데, 남자아이였고, 또 아픈 아이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집 앞에 잠시 서 있는데, 복도 창가 쪽 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챙챙! 칼 소리 같기도 하고 우아악-무언가 죽는 것 같은 기계음 소리도 들렸습니다.

띵똥 띵똥. 채 1분도 되지 않아 문이 열렸고, 눈이 사슴처럼 커다란, 빡빡머리의 사내아이가 저를 멀뚱거리며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니가 홍기니?” 내 질문에 아이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네… 맞는데요?”

저는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습니다. “나는 매임 데레사라고 해. 세례명이 기니까 그냥 매임이라고 다들 불러. 수녀님이 니네 집에 가보라고 해서 왔어. 참, 내가 누나니까 말 놓을게. 들어가도 되지?”

이미 막무가내로 들어가고 있었지만, 홍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들어가면서 슬쩍, 홍기 방을 들여다보니 어두운 화면에 소들이 피를 흘리며 나자빠져 있었습니다. 으읔, 보기만 해도 으스스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리니지’라는 게임이었습니다.

저는 마치 우리 집인 양 거실로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습니다. 홍기는 신기한 물건을 보는 표정으로 뻘쭘하게 저를 쳐다보고 있었더랬죠.

“프란치스코. 오락 그만하고 이리와 봐.” 홍기는 오락을 중지하고,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순순히 응해주는 모습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과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수녀님이 너 아프다고 그러시더라. 심심할 테니까 가서 놀아주라고. 그래서 내가 매일 너랑 2시간 놀 생각이거든. 마침 지금 방학 기간이고, 내가 공부를 엄청 잘해서 장학금 받아서 알바 같은 거 안 해도 되거든, 대단하지? 그래서 뭘 하고 놀까 생각했는데… 내가 잘하는 게 두 가지 있어. 한 가지는 수다 떠는 거, 또 한 가지는 기도하는 거. 그래서 한 시간은 너랑 놀고 한 시간은 같이 기도하고 싶어. 괜찮지?”

홍기는 조잘대는 저를 보며 피식 웃었습니다. “저도 심심했는데, 잘됐네요.”

빙빙 돌려서 말을 했지만, 결국 기도해주겠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텐데, 홍기는 생각보다 착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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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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