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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예수, 프란치스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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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하 매임 데레사(서울 시흥4동본당)

홍기는 위암 3기 판정을 받았지만,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병이 악화할 거라고 했습니다. 6개월 미만일지도 모른다고 수녀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마음이 괴로울 거고, 남의 위로 따위 싫다고 꼬여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웃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제대를 만들어야겠어, 홍기야.” 내 말을 홍기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기도할 제대 말이야. 작은 상 있니? 거기에 십자가, 초, 성경, 묵주 챙겨 와 봐.”

홍기는 거실과 안방 구석구석 뒤져서 찻상과 십자가, 성경을 챙겨왔습니다.

“초랑 묵주가 없구나. 내가 내일 챙겨올게. 매일 이 시간 괜찮니? 10시부터 12시.”

홍기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넌 어린 왕자고 난 여우가 되는 거야. 아닌가, 내가 어린 왕자고 니가 여운가? 책을 하도 오래전에 봐서 헷갈린다. 여하간 특별한 일 있을 땐 연락주고, 연락 없을 땐 난 10시에 올 거야.”

그날은 기도 없이 종알종알 수다를 떨며 두 시간을 채웠습니다. 일종의 워밍업인 거죠. 하지만 집을 나오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느님, 오락 대신 홍기가 성경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이죠.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가방에 초와 제대보, 9일기도책과 묵주를 챙겨서 집을 나오는 기분은 묘하게 설레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 또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무언가 깨닫게 해주실 거란 기대, 어쩜 홍기를 낫게 해주실지도 모른다는 상상으로 마음이 기뻐졌습니다. 홍기의 집 앞에서 가만히 숨을 고르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오늘 저희와 함께해 주세요.’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은 조용하니 오락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작은방 창문을 슬며시 들여다보니 컴퓨터는 꺼져 있었습니다.

띵똥 띵똥. 초인종이 울리자마자 홍기는 문을 열었습니다.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홍기, 안녕?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저는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홍기의 대답에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누나. 제 오락 아이템이 갑자기 없어져 버렸어요. 칼도 없고, 무기가 아무것도 없어요. 오락할 의욕이 완전 상실됐어요.”

오, 하느님. 저는 속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즉각적인 기도의 응답은 난생처음이었습니다. 게다가 상을 차리고, 초를 켜고 한 기도가 아니라 그냥 잠깐 지나가는 생각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생각만 하여도 주님은 알고 계신다’라는 생각이 드니까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게다가 집에 들어섰을 때 거실엔 성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읽고 있었어?”

홍기는 심드렁하게 대답했습니다. “누나가 한번 읽어보라면서요. 마땅히 다른 할 일도 없고요.”

제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곁에 계시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날부터 홍기와 묵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 지향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몰라 홍기에게 기도해보라 했더니 “난 기도 잘 못해요. 누나가 해봐요”라고 떠넘기기에 ‘홍기의 건강 회복’이라는 지향으로 기도를 함께 시작했습니다. 어색하고 낯설 텐데 홍기는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매일 아침 10시, 둘이 모여 기도하는 그곳엔, 성모님과 주님이 함께 계셨으리라 믿습니다. 2주 정도가 지나자 분심도 덜 생기고 기도에 집중하게 되면서 저희 둘은 그 시간이 기다려지고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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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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