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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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예수, 프란치스코 <3>

평화방송·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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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아침, 홍기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누나, 오늘은 오지 마세요. 기분이 안 좋아요.”

잠시 고민했습니다. 정말로 가지 말아야 할지, 아님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가야 할지. 저는 고민하면서 어느새 홍기네 집 앞에 다다랐습니다. 벨이 울리고 한참 지나서야 홍기는 어두운 표정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오지 마라니까….”

저는 아무 말 없이 따라 들어가서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긴 침묵이 흐른 후에 홍기는 저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친구가 전화해서 막 울었어요. 죽지 말라고. 그 전화 받고 나니까 마음이 너무 우울해요.”

저는 홍기 손목을 끌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우울할 땐 햇빛을 쐬는 거야.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가서 말씀드리자. 사람한테 얘기할 필요 없어. 나는 억울하거나, 슬프거나, 화가 날 때 성당으로 달려가. 그래서 하느님한테 막 쏟아부어. 그럼 신기하게 마음이 편해져. 그리고 나면 하느님께서 막 문제도 잘 해결해주시더라고.”

이미 미사는 시작해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당으로 들어섰을 때는 사람들이 참회의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성당 뒤쪽에 자리를 잡고 서서 주위를 주욱 둘러보던 홍기는 피식 웃음을 지었습니다.

“누나, 다 할머니들이야. 젊은 사람 우리 둘밖에 없어.”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당연하지. 다들 일하러 가고, 학교 가고. 오전 미사는 할머니, 아줌마들이 대부분이야. 왜, 웃겨?”

홍기는 언제 우울했느냐는 듯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상황이 웃긴 모양이었습니다.

“너 똑똑히 알아둬. 할머니들은 우리 천주교의 보배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이렇게 나와서 미사하고 기도하시니까 우리나라, 우리 가정, 우리가 편안하게 사는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스물셋에 어쩜 그리 지혜로운 말들을 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어쩜 신비일 테지요.

늦게 참석한 관계로 성체를 모시지는 못했지만, 함께 처음으로 미사에 참석한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엔 함께 떡볶이도 사 먹고, 매우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한 달간의 방학이 끝나가고 저는 다시 학교로 복귀했습니다. 대신에 기도 시간을 아침으로 옮겨서, 학교 가기 전에 홍기 집에 들러 기도를 바치게 되었습니다. 홍기는 다행히 상태가 나빠지진 않고 있었습니다. 편안한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또 놀라운 체험이 있었던 중간고사 기간이 돌아왔습니다. 중간고사는 일주일에 걸쳐 오후에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인간적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험 기간인데 매일 두 시간씩 홍기네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는 게 왠지 부담으로 느껴진 것입니다.

며칠 전부터 고민했지만, 당일까지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실망할 홍기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두 달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기도였습니다. 홍기는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홍기를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입에선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난 모르겠어요, 주님. 하느님의 의를 구하면, 나머지는 다 준다셨으니까 알아서 하세요. 전 장학금 받아야 해요.”

그렇게 저는 시험 첫날도 홍기네 집에 들러서 수다 떨고, 기도하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대신 학교에 가는 지하철에서 약 40분 동안 초 집중해서 책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치른 첫날, 저는 놀라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지하철에서 40분 동안 집중적으로 봤던 내용만 시험에 출제된 것입니다. 어느 시험보다도 자세하고 정확한 답안을 제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시험은 지하철에서 훑어본 내용에서만 나왔습니다. 저는 어느 때보다 시험을 잘 봤고, 어느 시험에서보다 더 좋은 점수, 그리고 가장 많은 액수의 장학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시험 기간 일주일 내내 저는 하느님의 현존과 응답을 뜨겁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정진하 매임 데레사(서울 시흥4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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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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