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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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예수, 프란치스코 <4>

평화방송·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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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난 주일에 저는 저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게 그간의 일을 상세히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홍기와 함께 기도한 시간, 내가 체험한 하느님의 응답, 중재기도의 놀라움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 단원들은 모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고, 기회가 되면 함께 홍기에게 가서 기도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월요일. 저는 홍기에게 우리 팀 단원들이 함께 와서 기도하고 싶어 한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홍기에게는 어쩜 내키지 않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우르르 몰려와서 기도한답시고 마음을 어지럽힐 수도 있는 노릇이기에 말하는 저도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홍기는 처음 저를 받아들여 줬을 때처럼 흔쾌히 그러라고 허락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 저희 단원 넷을 데리고 홍기 집에 도착했습니다. 세레나, 체칠리아, 브루노, 도미니코.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 네 명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우리는 겨우 스물, 많아야 스물셋이었습니다. 자칫 어색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브루노는 이미 홍기 프란치스코를 알고 있었습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신변잡기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약간 어색함이 있을 때, 참… 그것도 주님의 안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우리 팀의 예쁘장하고 귀여운 체칠리아가 방귀를 뿡- 뀐 것입니다.

홍기는 너무 웃겨서 빵 터졌고, 방귀를 터트린 체칠리아는 뭐가 문제냐는 듯 “여자가 방귀 뀌는 거 처음 봐, 다들?” 하며 너무나 당당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방귀 한 건으로 우리는 모두 다 낄낄대며 마음의 벽을 허물게 됐으니 그것 또한 주님의 역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또 무사히 하루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단원들과 매일 함께 기도할 수는 없었습니다. 모두 각자의 삶으로 분주했기에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함께 모여 기도했고, 그 나머지 시간 동안은 프란치스코와 제가 둘이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저는 홍기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이제 너도 속 이야기를 해봐. 자… 기도해봐. 주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 해봐. 한마디라도 괜찮아.”

묵주기도 전에 저는 홍기에게 기도를 해보라고 졸라대고 있었습니다. 홍기는 난처해 하며, 긴 침묵을 지키다가 드디어 토해내듯 한마디 내뱉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 말에 저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기도를 중단하고 밖으로 달려나갔습니다. 성당을 향해 울면서 뛰어갔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성당 입구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습니다. 성전에 뛰어들어가서 엉엉 소리 내 울었습니다.

“저 바보 같은 녀석, 스물한 살에 위암이나 걸려서 다 죽게 생겼는데 감사하다니… 머 저런 멍청한 놈이 다 있나… 하느님은 계시긴 한 건가. 왜 저렇게 어린아이를 데려가시려는 건가. 왜 나이대로 안 데려가시고 순서 없이 데려가시는 건가. 하느님의 정의는 뭐고, 왜 기도를 몇 달씩 해도 홍기는 낫지를 않는 건가…”

그동안 참았던 풀리지 않는 의문과 하느님께 대한 원망이 폭발한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기도는 다 들어주시면서 왜 홍기를 살려내지 못하시는지, 그게 젤 중요한 거 아닌가, 왜 날 홍기에게 보내셨는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감사하다는 홍기가 안쓰러워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한참을 엉엉 소리 내 울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제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돌아보니, 그곳엔 비오 신학생이 서 있었습니다. 저는 신학생에게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하느님은 왜 홍기를 살려주시지 않는 거예요? 왜 그렇게 어린애를 데려가시는 거죠? 성경에 보면 죽은 사람도 살리신다는데… 왜, 왜 안 살려주는 거예요? 도대체 나는 뭐라고 기도를 해야 해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신학생은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고는 저를 성전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저를 향해 아주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매님,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 있어요. 기도 지향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프란치스코를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마시고, 프란치스코가 행복하게 해달라고,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겁니다.”

저는 순간 울음을 뚝 그치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겨우 한 살 많았던, 평소엔 만만하기 그지없었던 비오 신학생. 그의 말에 놀라운 지혜가 있었고, 마치 예수님의 말씀처럼 제 머릿속을 관통하며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 정말로 하느님의 사람이 맞으시는구나. 나이 차이는 얼마 없지만, 저렇게 지혜롭고 권위가 있을 수 있다니.”

저는 아직도 그날의 비오 신학생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훌륭한 신부님이 되셨고, 또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돌아오며 저는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지향을 바꾸겠습니다. 홍기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마음에서 두려움을 없애주세요” 하고 말입니다. <계속>

정진하 매임 데레사

서울 시흥4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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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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