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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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예수, 프란치스코 <5·끝>

평화방송·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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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고, 홍기의 병세는 악화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암 치료로 유명한 원자력병원에 입원해 있는 기간이 늘어났고, 우리의 기도는 중지됐습니다. 매일 찾아가기엔 병원은 너무 멀었고, 치료를 받는 홍기도 기력이 약해져 면회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신 매일 미사를 다니게 됐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그렇게 마음을 다해 기도했던 적이 있나 싶습니다.

홍기가 보고 싶었고, 그 아이를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홍기 어머니가 하시는 식당에 들러 홍기 소식을 들었습니다. 치료가 힘든 모양인지,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고 했습니다.

매일매일 생각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가족과 친구들에겐 어떤 예술이 필요할까. 그를 위로할 음악, 미술, 영화, 연극…. 어떤 형태가 가장 위로가 될까. 결국 답은 옆에서 따뜻하게 손잡고 미소 지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은 특히나 날씨가 너무 흐렸고 기분도 좋지 않았습니다. 홍기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버스에 오르자 곧 비가 쏟아졌지만 비가 오든지 말든지, 벼락이 치든지 말든지 그냥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간호사의 안내로 병실로 들어섰을 때 저는 홍기를 찾지 못했습니다. 한참을 어찌 된 일인가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창가 쪽에서 누군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아주 작고 마른 몸, 그가 홍기였습니다.

“누나…”

저는 홍기를 바라봤습니다. 앙상하게 뼈만 남았고, 머리가 다 빠진, 그러나 커다랗고 빛나는 눈, 홍기가 맞았습니다.

“살이 많이 빠졌네…”

저는 놀란 맘을 내색하지 않으며 씽긋 웃었습니다.

“치료받느라 힘들어서 그래.”

홍기는 몸을 가누기가 힘든지 다시 드러누웠습니다.

“왜 왔어?”

한마디 하기도 힘들어 보이는 홍기가 무심히 툭 내뱉었습니다.

“안 본 지 너무 오래된 거 같아서…한 보름 됐나?”

홍기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누나, 손 좀 주물러봐. 손이 자꾸 저려.”

저는 말없이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기도할 때 손잡고 같이 기도했었는데, 아마도 그게 그리웠나 봅니다.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까?”

전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말을 건네보았습니다.

“무슨 얘기, 기대는 안 되지만.”

홍기가 피식 힘없이 웃었습니다.

“아주 재밌는 거야. 잘 들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사오정이 들으면 뭐라고 하게? 내 오늘 안으로 빚 갚으리오.”

그때 유행하던 사오정 시리즈 중의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홍기는 어이없다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리고 간호사가 들어와 치료시간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누나. 인제 그만 가. 나 치료 가야 해.”

홍기의 말에도 저는 선뜻 일어서지지가 않았습니다.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고, 잘못하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왔습니다.

“홍기야. 또 올게.”

“응.”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인사는 끝이 났습니다. 저의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어 며칠 후 홍기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홍기의 빈소엔 평소 그 녀석이 좋아하던 털 빠진 사자 인형과 피자, 치킨과 함께 홍기의 환하게 웃는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엄마와 오빠의 죽음으로 이제는 무뎌졌을 만한데도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또 무너지는 저를 보며 한참을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 오빠, 그리고 예쁜 동생 홍기가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낼 거란 생각이 들지만 남아 있는 사람으로선 그리움이 참 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홍기 주변의 모든 사람이 다들 놀라운 변화를 겪었다는 것입니다. 홍기의 가족 중 신자가 아니었던 남동생은 형의 죽음을 지켜보며 스스로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리기만 했던 우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홍기와 함께 기도하며 하느님의 현존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세레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라고, 주님과 함께 잘 지내다 오겠다고 씩씩하게 여행을 떠났고, 봉사와 기도, 무엇이 먼저냐에 대해 끊임없이 헷갈려 하던 우리는 단연 기도가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오늘의 소중함과 하느님의 의를 구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얻게 된다는 진실이 정말 진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을 위한 중재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 다들 마음 깊은 곳에 숨겨놓고 꺼내지 못했던 ‘하느님이 정말 계신가?’라는 원초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10년 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좋다는 피정과 연수, 또 해외 성지순례도 다녀왔습니다. 주님의 기적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도 지난 몇 년간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아주 평범한 데 있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했던 그 시간, 그 사람들 안에 충만한 하느님의 현존이 있었고, 우리는 그 기도 안에서 모두 뜨겁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사건은 바로 작은 예수였던 ‘홍기 프란치스코’와 기도 안에서 하나가 됐던 레지오 단원들입니다. 그리고 홍기를 만나게 해주신 수녀님과 결정적 순간에 기도지향을 바꿔주신 신학생. 결국은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었음에 놀랍고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 정진하 매임 데레사(서울 시흥4동본당)
 
신앙체험수기 연재는 이번 작품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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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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