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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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김수환 추기경] 주수욱 신부, 이돈명 변호사, 정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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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의 벗, 김 추기경’ - 주수욱 신부(서울 독산1동본당 주임)

시대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던 참다운 목자여

부당한 억압 당하는 노동자 문제 해결에 앞장
가난한 이들 전담하는 사목자 양성에도 힘써
인간 존엄성 수호 위해 싸웠던 진정한 예언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시고 그분을 닮으려고 무던히도 애쓰던 그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시고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던 이 시대의 예언자가 우리 눈앞에서 모습을 감추셨다.

가난한 이들의 벗

김수환 추기경은 가난한 사람들의 벗이다.

동일방직 노조원들이 오물을 뒤집어쓰고 그 여공들이 옷이 벗겨진 채 끌려갈 때, 이에 분노하고 그런 만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나무라시고, 노조원들을 위로하셨다.

본당에 견진성사를 주러 오셨을 때도, 청년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들어주시며 주의 깊게 만나시던 분이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자상하신 아버지로서, 참다운 목자로서, 벗으로서 가난한 사람들 곁에 다가가신 분이심을 모든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세상 한가운데에 있는 교회로

강화도의 한 작은 공장 노동자들이 해고되었을 때 그것을 주교회의에서 다루도록 하신 분이 김수환 추기경이시다. 그래서 김 추기경과 함께 교회는 사회와 대화하고 하느님의 생생한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에게 선뜻 다가가는 김 추기경을 보면서 한국 사회는 교회를 더 이상 낯선 종교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민족의 애환을 함께 하는 교회로 거듭 태어난 것은 분명하게 김 추기경 덕분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선물

사제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분이시다.

사제 수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제들을 파견하신데 전혀 인색하지 않으셨다. 필자가 서울대교구 소속 신부로서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가난하게 살고 싶어서 김 추기경께 말씀드렸을 때, 기꺼이 허락해주신 분이다. 또 누추한 빈민촌에 조용히 찾아오셔서 대화하시고 거친 식사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함께 나누시던 분이다. 가난한 젊은 노동자들과 함께 작은 기도 모임에서 한 시간 이상 기도하시던 분이시다.

이뤄지지 못했지만 교구 신부들이 노동사제가 되려고 했을 때 한국교회에 노동사제가 탄생하기를 진정으로 바라신 분이셨다.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어루만져주시던 시대의 예언자

서슬 퍼런 유신 시대에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달려와 호소할 때, 기꺼이 만나주셨다. 아파하는 사람들의 호소에 함께 아파하면서 귀를 기울이셨다.

한국은 매우 빠른 시간 안에 경제적으로 부자 나라가 되었지만 그 부작용으로 비인간화된 사회가 되어서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 시대에 앞서서 이 문제를 미리 알아보시고 예언자로서 마음 아파하시고 기회가 닿는대로 국민들에게 알리려 목청 높이던 큰 예언자이셨다.

때로는 성직자들 사이에서 불평이 터져 나왔다. 일부 신자들도 뒤에서 수군거렸다. 국민들 사이에서 의심의 눈으로 쳐다보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이 예언자는 자신의 사명을 꿋꿋하게 수행해나갔다.

십자가를 짊어진 어린양처럼.

◆‘그의 삶 기리는 것은 남은 이들의 의무’- 이돈명 변호사

인권유린에 ‘사랑’으로 대항

민주화·인권 운동 확립에 공헌
생전의 업적 잇는 것 우리의 몫

요즘 내 뇌리 속에서는, 주님께서는 참으로 오묘하신 방식으로 당신의 사람을 부르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런 나의 깨달음은 김수환 추기경과 한 시대를 살면서 더욱 깊어졌다.

쉰이 넘은 늦깎이로 주님의 자녀가 된 내가 김추기경과 가까워지게 된 것은 오롯이 그의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다. 주님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내게 추기경은 우리 시대에 하느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그분의 사랑을 펼치는 길이 무엇인지 열어 보여준 존재였다.

그의 일생을 되짚어 보는 것은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우리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일인 동시에 교회의 인권운동을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의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스스로를 민주화 현장으로 불러내 많은 이들과 따뜻한 ‘동지’이자 든든한 ‘형제’로 만나게 했다. 서슬 퍼런 독재시절에도 김추기경은 두려움 없이 주님만 보고 그분의 길을 내달린 이였다. 1970년대 민청학련 사건을 비롯해 3·1 구국선언, 김지하 시인 필화사건 등을 거쳐 1980년대 5·3 인천사태, 임수경 방북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 역사적 현장에서마다 그를 만날 수 있었고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것은 정치나 법을 떠나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라며 용기를 주던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이렇듯 그는 독재정권의 폭압과 인권유린에 ‘사랑’이라는 무기로 대항한 그리스도의 참다운 투사였을 뿐 아니라 투철한 신앙인이었기에 반대자들로부터도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이로써 그는 인권이 하느님의 정의 안에 자리 잡게 하는데 누구 못지않게 큰 공헌을 했다.

김추기경의 삶을 돌이켜 볼 때 그가 만나온 이들만 보더라도 그의 지향이 무엇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장애인, 홑몸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가난한 이들은 물론 누구의 눈길도 받지 못했던 철거민, 윤락여성들과 사형수들에게까지 먼저 다가갔다. 내 기억에 그런 김추기경의 방문을 받은 이들은 처음에는 놀라고 두려워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다만 그 두려움은 그의 큰 사랑에 대한 경외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그의 사랑 넘치는 모습은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타 종교인들과 믿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여주었다. 추기경의 삶은 그런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자(聖者)의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그를 추모하는 자리는 어떤 개인을 ‘신화’화하는 장으로서가 아니라 그가 행했던 아름다운 일을 기억하고 이를 이어받는 계기여야 한다.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개인의 것이 아니므로 특별히 따로 추모할 일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그가 믿고 의지하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살아있는 동안 그분의 입이 되고 몸이 되었던 것이니 그의 말과 행동은 그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차례다. 그가 미처 다하지 못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마저 바치는 일이야말로 남은 우리의 몫이다. 그의 삶을 기리는 것은 남은 이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나눔의 성자(聖者) 김수환 추기경님’ - 정점길(의정부교구 복음화학교 교장)

헌신적 나눔 실천하시던 그 모습 떠올라 가슴저려

“내게 필요한 것 나누라” 독려
항상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해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사회복지시설돕기 바자회 업무때문에 추기경님을 뵈러 집무실로 갔다.

항상 그러하시듯 따스하게 맞으시고는, 더운 날 수고가 많다 시며 냉커피를 특별히 청해 주셨다. 그런데 그만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잔을 들다가 잔 받침이 떨어졌다. 당황한 김에 얼른 잡는다는 것이 커피까지 탁자 위에 쏟고 말았다.

추기경님께서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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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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