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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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김수환 추기경] 가톨릭신문사 사장 재임시절 함께 근무한 이단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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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사람 성장 배려한 ‘아버지’ 같은 분
교회 현대화 몸소 실천하며 신문사 변혁 시도
아랫사람 고민 털어놓으면 기꺼이 고통 나눠

 

 

 
▲ 이단원씨가 소장하고 있는 가톨릭시보사 사장 재직 시절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
 

누군가를 기억하고 또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은 단순한 ‘사고’와 ‘의지’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이다. 더구나 ‘오래도록’이라는 수사가 붙게 되면 그 기억은 개인에게는 추억이 되고 개인을 넘어서면 역사가 되기도 한다.

김수환 추기경이 가톨릭신문사 사장 재임시절 함께 근무했던 이단원(다시아나·76·서울 길음동본당)씨에게 2년 남짓 고인과 연결됐던 기억의 끈은 다시 오랜 인연으로 이어져 삶 그 자체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기경의 그늘 밑에서 정신뿐 아니라 육체적인 생계를 이어왔다”는 이씨의 고백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그의 기억 속 깊숙이 자리한 인간 김수환, 추기경 김수환을 끌어내는 일은 그래서 아름다운 기억과의 재회이자 기록되지 못했던 역사의 재발견이나 다름없다.



# 한 장 사진으로 남았지만

내겐 빛바랜 고 김수환 추기경의 사진 한 장이 있다. 그토록 가슴에 담고 살아온 분이건만 달랑 사진 한 장으로 남아 있다니…. 그나마도 김 추기경을 떠나보내고 나서 그분의 흔적을 좇다 어렵게 찾은 것이어서 지금에는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 되고 말았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 가톨릭시보사(지금의 가톨릭신문사)에 재직하시던 시절 신문사 어디에선가 찍은 사진인 듯 싶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김수환 추기경은 언제나 만면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 분이지만 사진 속 그분의 모습은, 서글서글한 눈망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지만 웃음이 없다. 어쩌면 조금은 우수에 젖고 고뇌에 찬 듯한 모습이 언뜻 비치기도 한다.

그랬다. 2년 남짓한 시간, 가톨릭시보사 재직 시절 가까이서 뵀던 그분은 간혹 심각하리만치 웃음이 없으시기도 했다. 왜 그러셨을까. 짐작컨대 자신의 어깨에 놓인 십자가를 누구보다 사랑하시고 기껍게 지시면서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자신의 능력을 돌아보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혼자 계실 때는 늘 무얼 그리 골똘히 생각하시는지 말 붙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다가도 누군가와 말문이 트이면 우리가 알고 있던 그분으로 돌아오곤 하셨다.

내 기억으로 그분은 함께하는 누구에게도 화를 내신 적이 없는 분이셨다. 그렇기에 가까이서 그분을 체험한 이들이라면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냉정한 분이라는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언행일치의 사표

김수환 신부님이 가톨릭시보사 사장으로 부임해온 것은 1964년 6월, 여름의 문턱을 막 넘어서던 무렵이었다.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교수신부님의 추천으로 대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961년부터 시보사 기자로 일하고 있던 내게도 새로 온 사장 신부의 일거수일투족은 눈길이 쏠릴 만한 것이었다. 그분은 그때까지의 신문사 기풍을 확 바꿔놓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당시 한창 열기를 더해가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목표이기도 했던 교회의 현대화(aggiornamento·아죠르나멘토)를 몸소 실천하고자 하셨던 것 같다. 당신 스스로도 상당히 진취적이고 현대적인 사고와 행동의 면면을 보이기도 하셨지만, 그런 모습은 신문사의 운영 전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당장 가톨릭교회 안으로 한정되다시피 하던 필자를 형제 교회들은 물론 타 종단에까지 개방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셨다. 강원룡 목사, 이상근 목사, 성공회 노대영 신부 등 개신교 저명인사들의 글이 신문 지면에 등장하는가 하면 비신자들의 글이 실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교회 일각에서는 가톨릭 정신을 흐리게 하는 처사라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추기경은 하느님 사랑 안에 있는 목소리라면 무방하다는 입장으로 고수하시며 편집방향을 바꾸지 않으셨다. 특히 교회일치를 강조하시며 형제 교회들과의 대화를 일궈내려 애쓰신 면모는 지금 생각해봐도 탁월한 혜안이 바탕이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인간에 밀착된 존재

나는 김 추기경이 신문사에 오실 때까지도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지만 그분은 그 어떤 강제나 강압도 없으셨다.

늘 온화한 모습으로 모든 신문사 가족들을 대하셨던 그분은 내게 34세의 짧은 생을 불살랐던 영성의 대가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를 직접 소개해주시고 수시로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 기관의 대표라는 위치에 계신 분이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추기경이 직접 사주신 베이유의 「사랑과 죽음의 팡세」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심취했지만 왜 그분이 하필 베이유를 권하셨는지는 지금도 궁금하다. 이 외에도 그분은 틈틈이 묵자 철학을 들려주시는 등 당신 곁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장을 배려하시는 따뜻한 아버지의 모습이셨다. 나뿐만 아니라 추기경과 잠시라도 함께 지낸 사람이라면 그분이 영원히 ‘우리 편’이라는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적으로도 알면 알수록 참 매력적인 분이셨다. 그런 그분의 삶에 매료되어서일까, 나는



가톨릭신문  200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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