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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수 대주교 장례식·추모 종합

무거운 짐 내려 놓으시고 주님 곁에서 편히 쉬소서. 종교·지역 초월해 최영수 대주교 선종 애도. 닷새동안 하루 6~7000명 찾아와 연도 바쳐. 장례미사서 생전 모습 담은 영상 상영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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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대교구장 직무대행 조환길 주교가 9월 3일 오후 11시 대구 주교좌 계산성당에서 최영수 대주교의 입관 예절을 주례하고 있다.
 

끊이지 않은 추모 물결

○… 8월 31일 최영수 대주교의 선종 이후 빈소가 마련된 계산성당은 추모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연도가 이어졌고, 하루 7대 봉헌된 추모미사에도 신자들이 성전을 가득 채웠다. 계산본당 전례위원장으로 4일간의 미사 진행을 도왔던 심인섭(그레고리오·51)씨는 “전국에서 찾아온 신자가 어림잡아 하루 6~7000명은 됐다”면서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신자들을 지켜보면서 최 대주교님이 교회 어른으로 신자들에게 얼마나 큰 의지가 된 분인지 새삼 깨달았다”고 전했다.

○… 추모 물결은 종교·지역의 벽을 넘어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화환을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으며,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대한 불교 조계종 동화사 주지 허운 스님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입관 예절·장례미사

○… 9월 3일 오후 11시, 교구장 직무대행 조환길 주교의 주례로 입관 예절이 진행됐다. 30여 분간 진행된 입관 예절에는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와 서울대교구 염수정 주교 및 동기 사제, 교구 장의위원회와 사제단, 유가족 등이 참여해 최 대주교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최 대주교는 대주교 제의와 주교관을 착용, 손에 묵주를 지니고 영면의 길로 떠났다.

○… 최 대주교의 관은 9월 4일 오전 9시 계산성당에서 출관예절을 치른 후, 장례미사가 봉헌될 대구가톨릭대학교 남산동캠퍼스 성김대건기념관으로 향했다. 오전 10시 미사. 성김대건기념관 앞에는 미사 시작 3시간 전부터 신자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미사 시작 1시간 전에 도착한 신자들도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 이들을 위해 교구는 기념관 앞 운동장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 미사 진행 과정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 9시30분 경, 최 대주교의 운구 행렬이 남산동캠퍼스에 들어섰다. 실내는 물론 운동장을 가득 메운 수천의 신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최 대주교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정진석 추기경과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가 입구에서 운구 행렬을 맞았고, 최 대주교의 관 뒤로 유가족이 뒤따랐다.

○… 장례미사에 이어진 고별식에서는 최 대주교의 생전 모습이 영상으로 상영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늘 웃는 모습의 최 대주교 사진과 함께 전달된 생전 음성은 2008년 1월 ‘교구설정 100주년 준비위원회’ 출범 당시의 당부를 담은 것으로, 힘이 실린 최 대주교의 메시지에 신자들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유지를 이어가리라 다짐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 미사 후 고인의 시신은 장지인 대구대교구청 내 성직자묘지로 운구됐다. 교구청 입구에서부터 교구 사제단과 신자들이 길 양쪽으로 도열해 운구행렬을 배웅했으며, 시신은 주교단과 교구 사제단, 유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3.96㎡(1.2평) 넓이의 묘지에 안장됐다. 2001년 최 대주교가 장례위원회 위원장으로 장례를 주관했던 서정덕 주교의 옆자리에 묘소가 마련돼 ‘죽음’의 의미를 새로이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이들

○… 최 대주교는 복음을 실천하는 ‘포콜라레 영성’을 사제 생활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전국 포콜라레 사제 20여 명과 회원 400여 명은 9월 2일 오후 8시 계산성당에서 최 대주교와 함께 포콜라레 사제학교에서 지낸 이종대 신부(대전교구 강경본당 주임)가 주례한 추모미사에 참례했다. 대구 포콜라레 창설 당시부터 최 대주교와 친분을 쌓아온 대구경북 포콜라레 여성대표 김정숙(마니피캇·61)씨는 “몇 개월 전 병문안을 갔을 때에도 많이 지쳐보이셔서 ‘힘드시죠’하고 말을 건네면 ‘괜찮다, 견딜만하다’라고 웃어주시며 오히려 방문객들의 안위를 챙기는 분이셨다”고 고인을 추억하며 “우리에게 삶으로 가르쳐주신 사랑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 가장 앞줄에서 추모객을 맞았던 고인의 친형 최상수(마르코·81)씨. 그는 고인을 추억하며 “교구 100주년을 앞두고 무척 애를 많이 썼지만 뜻대로 안돼서 교우분들에게 늘 미안하다고 말했었다”면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으니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했던 모든 것을 두고 이제는 편안히 지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기옥·우세민·이도경·이나영 기자
 


 
▲ (위) 대구·경북지역 불교계를 대표하는 조혜종 동화사 주지 허운 스님 일행이 9월 2일 오전 계산성당 고 최영수 대주교의 빈소를 찾았다.
(아래) 최영수 대주교의 유가족들이 하관을 지켜보면서 흐느끼고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9-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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