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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추기경 추모 국제 학술 심포지엄] 두 추기경 이야기 : 김수환 추기경과 매닝(Manning) 추기경

시회문제에 교회 참여 적극 유도. 노동자 권리 옹호 하며 소외된 이와 함께한 삶. 근로자들의 교회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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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먼드 라이덴 교수
 

 
-발제 : 에드먼드 라이덴 교수(대만 보인대학)

김수환 추기경은 박정희 정권하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강력하게 옹호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국의 매닝 추기경 역시 노동자에 대한 지원, 특히 1889년에 있었던 런던 부두 파업과 관련해 유명한 분이다. 매닝 추기경은 젊은 시절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1872년, 1874년 전국민 농민조합을 대신하여 연설하였고, 잉글랜드의 토지법 개정을 요구하였다. 런던 부두파업이 있었던 1889년, 82세의 매닝 추기경은 오점부터 밤까지 부두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했으며 결국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를 받아들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매닝의 세심한 관심과 분별력은 노동자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2년 뒤 그가 서거하였을 때 수많은 영국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그를 추모했다. 런던 부두파업 후 교황 레오 13세는 첫 번째 사회문제에 관한 회칙인 ‘노동헌장’을 작성했는데, 이때 교황은 매닝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수환 추기경의 첫 번째 도전은 1967년 강화도 방직공장 사건 이후 교회가 핍박받고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을 대신해서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이를 실천에 옮겼다. 추기경의 일생은 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한 삶이었다. 이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노동하는 인간’이 나온다. ‘노동헌장’ 이전에 있었던 매닝 추기경과 ‘노동하는 인간’ 이전에 있었던 김수환 추기경의 입장을 비교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두 추기경은 교회를 사회적 문제에 대해 참여하도록 이끎으로서 교회가 새로운 세기로 나아가게 하였다. 이들이 우리의 교회가 실로 일 하는 사람들, 노동자들의 교회임을 보여준 것에 감사한다.

 
정리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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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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