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사제수품 후 처음 맞이한 예수성탄대축일, 김수환 신부는 사제관에 군불을 때고 성당 인근을 헤매는 어려운 이웃들을 모았다. 가난에다 전쟁까지 겹친 때였지만, 모두와 밥 한그릇씩을 나눴다.
“나 같은 사람 신경 쓰실 여력이 어디 있으시다고 날마다 안부도 물어주시고….” 명동 거리 노점상 할머니에게 김 추기경은 가족 같은 존재였다.
기도를 필요로 하는, 눈물겨운 삶을 모질게 이어가야 하는 이웃들이 너무나 많았다. 때론 “하느님 제 체면을 봐서라도 꼭 들어주십시오. 사람들은 추기경이 기도해 주면 뭔가 다를 거라고 믿습니다”라며 어린아이처럼 떼까지 썼다.
“내 삶을 돌아볼 때마다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더 가난하게 살지 못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것….”
하지만 이 시간, 다시 돌아본 그의 흔적은 항상 낮은 곳에서 이웃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