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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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길 수도의 길] (11)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빈자와 약자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선교의 꽃망울... 선교는 수도회의 존재 이유... 말보다 실제 삶으로 복음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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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는 꼰솔라따 성모의 모범을 따라 선교 사명을 실천하는 것을 카리스마(은사)로 삼고 있다.
특히 가난한 이들과 함께살며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종교 간 대화를 통해 인간 발전에 이바지하는데 사도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사진은 `꼰솔라따 성모와 예수 아기` 이콘.
 

 
▲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 당시 서울 노동사목회관에 모인 남미공동체 신자들이 미니 올림픽 게임을 즐기고 나서 한데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다들 목에 메달을 걸고 있는데, 이는 공동체 모임에 참가한 자체가 다 메달감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 타므랏 신부가 아프리카 출신 이주노동자들 임금체불 문제에 대해 협의한 뒤 마이클 애덤 아프리카공동체 대표를 축복하고 있다.
전대식 기자 jfaco@pbc.co.kr
 


동두천으로 가는 길은 멀다. 서울 명동에서 전철로만 69분이나 걸린다. 4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보산역까지 1시간 30분을 훌쩍 넘겼다. 금세 비라도 내릴듯 어느새 우중충 흐려 가라앉은 하늘이었다. 거리는 황량했다. 미 2보병사단이 주둔한 캠프 케이시 정문 앞 외국인특구지역에 내려서자 영어 간판이 줄지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작은 이태원`과도 같이 이국적이다.

 꼰솔라따 선교수도회 선교사 타므랏 더팔 신부가 동두천에 자리를 잡은 것은 2007년 10월이었다. 당시 수도회가 이주사목을 하고자 동두천시 생연동에 동두천 분원을 개설하자, 그는 기꺼이 동두천으로 왔다. 2001년 9월 1일 고국 에티오피아에서 사제품을 받고 6개월 만에 국내에 들어와 6년간 한글을 열심히 익히며 빈민사목을 해온 터라 한국어 구사도 익숙해져 있어 사도직을 수행하는 데 자신이 붙는 상황이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동두천성당에서 더팔 신부를 만나 수도원으로 향했다. 일반 주택을 고쳐 지은 수도원은 아담했다. 수도원에 들어서니 방 한 칸을 개조한 경당이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옥 모양 감실에 아담한 제대, 아늑한 전례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숙소와 주방 등도 한 공간에 다 들어있다. 2층은 쉼터다. 이주노동자들이나 북한이탈주민들이 오갈 데 없으면 몇 달씩 머물다가 떠난다고 한다.

 마침 더팔 신부가 아프리카공동체 마이클 애덤(41) 대표를 만나러 간다기에 우산을 들고 급히 따라나섰다. 이동차량은 배기량 1.4리터 짜리 국산 소형차였다. 빗길을 뚫고 고층아파트단지로 접어드는 운전 솜씨가 여간 능숙한 게 아니다. 동두천에서 다져진 운전솜씨란다.

 그런데 골목에서 만난 애덤 대표가 아프리카 출신 이주노동자를 데려온다. 마침 보문역 근처에서 우연찮게 만났는데, 더팔 신부에게 인사를 시키려고 데려왔다고 한다. 영어로 특유의 제스처와 함께 나누는 짤막한 대화를 들으니 여간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다.

 미국 시카고에 가족을 둔 채 10년째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애덤씨는 자신의 조국 나이지리아 등지로 중고차 등을 수출ㆍ입하느라 늘 바쁘지만, 이주노동자들보다는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있어 아프리카공동체에 함께하며 더팔 신부를 돕고 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로 사는 아프리카인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신부님, 요즘 들어서는 서울에서도 여기까지 연락이 와요. 연락할 데가 없나봐요. 어쩌면 좋지요?"

 "언어 문제가 가장 심각해요. 말이 통하지 않으니, 임금이 체불돼도 어디 하소연도 못하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답답해요."

 요즘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 단속 때문에 아프리카공동체 모임에 나오는 이주노동자도 20명 안팎에 그친다며 애덤 대표는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아프리카 형제들에게서 도움 요청이 오면 애덤 대표는 더팔 신부와 함께 팔을 걷어붙인다.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적 연대를 위한 가교가 되기 위해서다.

 낯설고 물선 한국 땅, 그것도 최전방 군부대 접경지에서 이주노동자로 힘겹게 사는 형제들과 함께하고픈 마음만으로 더팔 신부는 이아일 이드로보 신부 등과 함께 수도원을 세우고 뿌리를 내렸다. 더팔 신부는 아프리카공동체를 비롯해 영어권 이주민을, 이드로보 신부는 남미공동체와 비영어권 이주민을 각각 보살핀다.

 평일엔 공장으로, 병원으로 봉사자들과 함께 이주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며 임금 체불 문제를 상의해 해결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해주느라 애를 쓴다. 성가복지병원이나 도티기념병원 같은 무료 병원에 데려가거나 입원 중인 이주노동자들을 보살피기도 한다.

 주말은 더 바쁘다. 첫째 주엔 남양주 마석성당에서, 둘째



가톨릭평화신문  201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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