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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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길 수도의 길] (31) 느베르 애덕 수녀회

수도복 벗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더불어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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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봄 아이티 지진 피해 현장 취재 때 동행했던 한여림 수녀와 인연으로 `느베르 애덕 수녀회`를 찾아갔다.
 느베르 애덕 수녀회는 한국에 진출한지 10년밖에 안 돼 신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다. 명색이 교회 신문사 기자인데도 한 수녀를 만나기 전까지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1858년 프랑스 루르드 성모 발현의 주인공인 베르나데타 성녀(1844~1879)가 입회해 선종할 때까지 수도생활을 했던, 프랑스에서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수도회라는 얘기를 듣고 꼭 한 번 방문하고 싶었다.
 

 
▲ 기도실에 모여 저녁기도를 봉헌하는 느베르 애덕 수녀회 수녀들.
 

# 베르나데타 성녀가 몸담은 수녀회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다. 혼자서도 잘 찾아갈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굳이 추운 날씨에 한 수녀가 큰 길까지 마중을 나왔다. 주택가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양옥집이 수녀원이다. 대문 옆에 수녀회 이름을 적은 작은 현판이 걸린 것 말고는 일반 가정집과 별반 차이가 없다.
 짧은 머리에 수도복 대신 사복을 입은 수녀들이 반가이 맞는다. 수녀들의 저녁식사에 초대받는 과분한 환대를 받은 데다, 가정집과 똑같은 분위기라 그런지 가까운 이웃집에 놀러온 기분이다.
 1999년 한국에 진출한 느베르 애덕 수녀회는 한국공동체 대표를 맡고 있는 프랑스인 쟈클린 수녀를 비롯해 한국인 수녀 두 명, 일본인 수녀 두 명 등 5명이 국제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우리말이 서툰 쟈클린 수녀는 영등포 요셉의원에서 봉사하며 보문동 노동사목회관에서 이주민 여성들과 한국어를 배우는 한편 서강대에서 프랑스어 성서모임을 지도하고 있다. 한국인 정순남 수녀는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상담심리를 공부한다. 또 일본인 바울라 요시오카 수녀는 파주 다문화가정센터 `국경 없는 친구들`에서, 한여림 수녀는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에서 일한다. 막내인 일본인 나미 후쿠자와 수녀는 성가복지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봉사하며 간호조무사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관상과 활동 두 가지 정신으로 교회와 세상에 봉사하는 느베르 애덕 수녀회의 사도적 삶은 공동체가 자리잡고 있는 지역 사회 안에서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다. 수녀회는 가난 때문에 교육ㆍ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제법 규모가 큰 병원과 학교, 복지시설 등을 많이 운영했으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구나 정부, 평신도들에게 모두 넘겼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소외된 이들 중에서도 가장 버림받은 이들을 찾아 현장으로 투신하는 삶을 택한 것이다.
 정 수녀는 "심지어 베르나데타 성녀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본원의 관리ㆍ운영도 일반인에게 맡겨 우리 수녀들도 본원을 방문할 때는 숙박료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 프랑스 중부 느베르에 있는 수녀회 본원 건물
 

# "영성의 근원으로 돌아가라"
 느베르 애덕 수녀회는 어떠한 고유 사업이나 시설을 운영하지 않고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들어가 작은 공동체를 이뤄 살며 사도직 활동을 펼치는 것이 특징이다. 교구 조직은 물론 타 종교 시설이나 일반 민간단체에 속해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정 수녀가 어르신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는 곳은 불교계 복지관이다.
 "우리는 `영성의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더불어 그들 안에서 동등한 처지의 동반자로 살고자 합니다."
 정 수녀는 공의회 이후 수도복을 벗고 사복을 입는 것도 바로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이 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수도복을 벗음으로써 수도자의 삶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 짓지 않고, 세상 안에서 한 알의 밀알로 존재하면서 하느님 사랑을 전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삶 안에서 가난과 질병, 알코올 중독, 장애로 고통 받는 이들, 가족에게 버려져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 의지할 곳 없이 빈곤과 외로움 속에 근근이 살아가는 어르신, 사회적 차별을 받는 다문화가정 등을 위한 보살핌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수녀들이 그날 하루 일과를 나눈다. 프랑스어로 대화를 하는지라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분위기로 보아 매우 열띤 토론을 벌이는 것 같다. 때때로 조금 높은 톤으로 대화를 이어가기도 한다.
 한여림 수녀는 "우리 수녀회는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하기에 나이 많은 선배 수녀부터 어린 막내 수녀까지 거리낌 없이 자기주장을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녀회 회원들은 각자 사도직 현장에 출근(?)해 활동하기에 다른 수녀원처럼 일과 중에 공동기도를 갖는 시간이 많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한 시간 정도 각자 묵상기도를 하고 일터로 출근했다 모두 귀가하는 저녁 7시에 기도실에 모여 복음을 읽고 공동기도를 바친다.
 "기도 방법도 조금 달라요. `사도직 기도`라고 하는데, 성무일도처럼 정해진 기도를 합송하지 않고 각자 사도직 현장에서 겪은 체험을 나누면서 그날 만났던 사람들과 느낀 점 등을 지향으로 기도를 봉헌하지요."
 여러 면에서 이전에 취재했던 수도회와는 색다른 느낌과 경험이었다. 목에 걸고 있는 십자가 목걸이만 아니면 그냥 평범한 동네 아주머니와 다름없어 보이는 수녀들에게서 "사랑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지 않겠다"고 한 베르나데타 성녀의 사도적 열정이 느껴졌다.
서영호 기자 amo



가톨릭평화신문  201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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