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레 뭉쳐진 하얀 꽃눈이 시리도록 곱다.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에서 효창운동장으로 접어드는 길목엔 백목련이 줄지어 있다. 소담스럽게 핀 목련꽃 향기가 아슴아슴 번지는 서울 효창동 주택가에서 수도원을 만났다.
#올해 한국 진출 25돌 맞아
작은 형제회, 꼰벤뚜알 프란치스꼬회와 함께 1회 프란치스칸의 세 기둥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 한국보호구(보호자 에드워드 다울리 형제) 천사들의 성 마리아 형제회 수도원이다.
라틴어 원문 그대로라면 `카푸친 더욱 작은(Minoritas) 형제들의 수도회`로 번역돼야 할 이 수도회는 기도와 형제애, 복음화, 가난, 더욱 작음의 영성으로 프란치스코가 살아간 삶을 닮으려하는 `형제적 공동체(Fraternitas)`다.
그래선지 수도원에 들어서자마자 맨 처음 들은 단어는 `형제`라는 말이었다. 공동체 안팎 어디서나 사제든 평수도자든 차별 없이 형제라는 호칭만으로 불리는 공동체를 접하니 좀 낯설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처럼` 살며 형제애를 중시하는 공동체에 호감과 편안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동시에 `더욱 작은 자`로 살고자 하는 형제들 삶에 대한 궁금함도 커졌다.
▲ 카푸친들 삶의 목적은 기도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스스로 곧 기도가 된 사람, 성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다.
사진은 공동체 낮 전례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긴밀히 체험하며 그분과 깊은 관계를 맺는 한국 카푸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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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한국 진출 25돌을 맞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 사도직은 단출하다. 서울 지역 형제회 경당을 개방, 고해성사를 상설화하고 성체조배경당으로 발전시켰으며, 수련소가 있는 가평 지역 형제회에선 소규모 피정을 지도한다.
힘이 닿는 한 재속 프란치스코회원 양성과 영성 보조를 위해 봉사하는 것도 주요 사도직 가운데 하나다. 이마저도 지난 2009년 성탄 전야부터 본격화됐고, 이전엔 관상생활과 함께 수도 공동체가 한국에 뿌리를 내리는 데 주력했다.
상설 고해성사 마련은 1986년 카푸친 형제들을 서울대교구에 초청한 김수환 추기경의 교구민을 향한 사목적 사랑이 계기가 됐다. 유럽에 갈 때마다 신자들이 카푸친회 성체조배경당에 들러 자유롭게 기도하고 고해성사를 받는 모습을 마음에 담아뒀던 김 추기경은 카푸친 형제들을 초청해 성체조배와 고해성사 거행을 한국에서도 활성화하려 했다. 김 추기경은 생전에 한국 카푸친들을 만날 때마다 언제 이 사도직을 펼칠지 궁금해 했다.
이같은 김 추기경의 오랜 바람과 `고해실의 사도`로 불린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모범을 따라 한국 카푸친들은 지난해 3월부터 서울 형제회 경당에서 고해성사를 주고 있다. 평일엔 오후 2~5시, 토요일엔 오후 2~7시다. 토요일엔 영어 고해성사도 1시간(오후1~2시)씩 주고 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적을 땐 대여섯 명, 많을 땐 열댓 명에 그치지만, 수도회측은 단순한 숫자보다는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 자비를 드러내는 데 더 비중을 둔다.
카푸친들의 고해성사는 편안하기 이를 데 없다. 고해소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느님과 화해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 것이기에 편안하게 이야기하도록 한다. 신변잡사를 얘기해도 고해성사에서 신자들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위로를 해주는 데 더 주력한다.
▲ 한 자리에 모인 한국 카푸친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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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국인으로는 첫 카푸친 사제가 된 강주현(프란치스코 마리아) 형제는 "화해와 기쁨의 성사인 고해성사가 한국교회에선 냉담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이 너무도 충격적이었다"며 "하느님 자비를 청하는 고해성사가 마치 심판인 것처럼 오해를 받고 보속 부담으로 또 다시 냉담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고해성사를 상설했다"고 말한다.
#하느님과 화해 돕는데 힘써
이뿐 아니라 날마다 오전 7시부터 밤 9시까지 성체조배경당을 개방, 성체조배를 돕고 있다. 매주 목요일(첫 주 목요일은 제외) 오후 8시 성체조배경당에서 성체강복을 거행하고, 형제회를 방문하는 신자들과 함께 아침기도(오전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