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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수단에서 온 편지] (24) 한만삼 신부님이 남긴 말

“말레이치(미안합니다)·엔 아냐르 인(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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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그리고 점점 작아지더니 먼 하늘 위로 사라집니다. ‘엇, 이게 뭐지?’ 지난 일년 동안 룸벡공항에서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지만 이처럼 가슴이 텅 비고 또 무언가 비장해지는 느낌은 처음입니다.

수원교구 피데이 도눔 신부로서 남수단 룸벡교구에 파견돼 4년을 지내고 아강그리알과 쉐벳에서 후배신부들의 버팀목이 돼주었던 한만삼 하느님의 요한 신부님이 한국으로 떠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텅 빈 듯 허전하고 또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어떤 비장함도 느끼는가 봅니다.

‘잘 다녀올게’가 아닌 ‘잘 지내’라는 인사말이 이처럼 낯설게 느껴질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다시 보겠지만, 이곳 남수단에서는 다시 볼 수 없음이 큰 공허함으로 다가옵니다. 저희 신부들뿐만 아니라 마을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 이별의 슬픔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는 사람들, 이들이 한 신부님의 떠나는 길에 함께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한 신부님이 놓고간 신발과 옷을 탐내는 아이들도 있네요. 역시 재미있는 아이들입니다.

한 신부님은 지난 4년간 이곳에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정말 ‘많은’ 일을 하셨죠. ‘월요일은 쉬는 날이니까 무조건 쉬어’ ‘점심식사하고 오후 3시까지는 일하지 말고 쉬어’라고 하셨지만 한 신부님은 어느새 발전기를 돌리고 용접을 하거나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고 또 고치셨습니다. 설마 한국에 가서도 발전기를 돌리지는 않으시겠죠?

한 신부님은 이곳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을 남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이 남기신 말씀과 얼핏 비슷한 느낌인데요. 이곳 사람들이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에 굉장히 인색합니다. 성당에 오래 나온 신자들은 한 신부님으로부터 교육을 받아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 말을 할 줄 아는데, 그렇지 않은 이들은 상처를 치료해주거나 어떤 도움을 줘도 절대 이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한 번은 치료받고 그냥 가려는 아이를 붙잡아 세우고 ‘고맙습니다 라고 해봐’하고 알려주었는데 굉장히 부끄러워하며 차마 입을 떼지 못했습니다.

‘말레이치’, 미안하다는 말입니다. 얼마 전 아이들에게 옷을 나눠주는데 한 아이가 실수로 뒤에 있는 아이의 발을 밟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저 아이들이 싸우면 어쩌나’ 싶었는데, 발을 밟은 아이가 바로 ‘말레이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이곳에서 지내며 자기 잘못에 대해 미안하다고 시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보았습니다. 한 신부님 덕분이죠.

한 신부님은 떠나시기 전 사람들에게 또 다른 말을 하나 가르치셨습니다. ‘엔 아냐르 인’, 사랑합니다라는 뜻이죠.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한 신부님이 뿌리신 씨앗은 분명 풍성한 열매로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그동안 이 험한 땅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셔서도 좋은 사목자로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 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 수원교구 아프리카 수단 선교 위원회 http://cafe.daum.net/casuwonsudan

※ 문의 031-548-0581(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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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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