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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수단에서 온 편지] (26) 다이나믹 수단

“부담 갖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부딪쳐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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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말, 이곳에 오려고 준비하던 동기신학생 한 명이 갑자기 못 가게 됐습니다. 그 신학생을 대신할 사람을 찾던 그때, 수단에 다녀오셨던 아버지 신부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난 그 친구들을 잊을 수가 없어. 다시 만나고 싶어.”

신기했습니다. 신부님의 말씀에서 굉장한 힘이 느껴졌습니다. 막연하게나마 그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막연한 기대는 선명하게 바뀌었습니다. ‘그들에게 배우고 오자’는 기대말입니다.

아강그리알에서 보낸 한 달간의 삶을 요약하자면 ‘다이나믹 수단’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곳에서 접하게 되는 비참한 현실은 물론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특히 이태석 신부님의 말씀처럼 밤하늘의 별들과 아이들의 눈망울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해지는 선물이었습니다. 언제나 정답고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의 인사, 도움이 필요한 이를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들, 이곳이야말로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간단하지만 이곳에서 필요한 일들을 맡게 됐습니다. 가령 아이들과 함께 리코더나 멜로디언을 연주한다든가, 자동차와 망가진 의자를 수리하고 축구공과 배구공을 보관할 상자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리코더나 멜로디언을 배우려는 아이들도 없을 뿐더러 자투리 자재들을 모아 잘라내고 용접을 하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은 군대에서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일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것들을 정말 잘해내서 이곳에 저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실수라도 할 것 같으면 지나치게 세심해지고 소극적으로 대처하게 됐습니다.

이런 제 모습이 티가 났나 봅니다. 하루는 표창연 신부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말씀인즉슨, 제가 못해도 좋고 행여나 실수를 하게 되더라도 그것까지 감안해서 맡긴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부딪쳐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저는 큰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하루하루를 정말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신부님께서도 그럴진대 하물며 ‘하느님께서야 오죽하실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부제품을 앞두고 부족한 저의 모습을 성찰하다보면, 교회에 큰 누가 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통해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려는 성실함으로 살아갈 때 발생하는 실수나 실패는 하느님께서도 이미 감안하시고 불러주셨다는 것을 강하게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께서 처음 부르신 제자들이야말로 고기를 잡지 않을 때도 그물을 손질하는 성실한 이들이었습니다. 일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것이 아닐까요? 준비도 없이 찾아온 이곳에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갑니다.

저는 이제 한국교회가 우리만을 위한 교회에서 벗어나 나눠줄 수 있는 공동체로 성장했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어쩌면 미래를 향한 한국교회의 희망이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도 안에서 함께 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지난 7월 한 달간 아강그리알을 다녀온 임재혁(스테파노) 신학생은 이곳에서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 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 수원교구 아프리카 수단 선교 위원회

http://cafe.daum.net/casuwonsudan

※ 문의 031-548-0581(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임재혁(스테파노·신학생)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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