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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삼 신부의 수단에서 온 편지] 3

열악한 먹을거리로 힘겹게 삶 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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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오쿠라’

수단의 건기는 평원을 뒤덮은 갈대풀들이 노랗게 말라가면서 시작됩니다. 올 11월부터 내년 4월까지 이어질 6개월의 건기 동안에는 한 방울의 비도 오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먹을 것이 없는 숲속은 더 어려워져서 사람들은 물을 찾아 마을을 떠나 강가로 이동해서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연명하기 시작하지요. 수단의 건기는 이곳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이 열악한 먹을거리 때문에 힘겨워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교구에서 보내준 비닐하우스대로 ‘그늘 하우스’를 만들고 케일과 몇몇 채소를 경작하기 시작했는데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물을 퍼 와야 하는 수고도 기꺼이 감수하고 있지요. 목숨 걸듯 채소를 경작해야 하는 이유는 구할 수 있는 야채라곤 양파밖에 없는 수단에서 건강을 지키며 생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기도 합니다.

채소를 생각하니 ‘오쿠라’라고 하는 수단의 채소와 관련된 일이 있었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쿠라를 한 자루 따온 것이었습니다. 오쿠라는 연두색 빛깔에 길쭉한 애호박 같은 기름기가 많은 채소입니다. 귀한 채소였는데 커다란 자루의 오쿠라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곤 제게 이 오쿠라를 사달라고 조르는 것이었습니다. 얼마인데요? 20파운드를 불렀습니다. 헉! 우리나라 만원 정도의 돈이었습니다. 조금 깎아달라고 하니 난색을 표합니다. 조금만 사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러더니 오늘 하루 종일 신부님 생각하면서 따왔는데 안사주시면 어떻게 하냐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번쩍 귀가 열려서 그녀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생글 생글 웃으며 하는 말이 거짓말을 하는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자루를 보았습니다. 자루에 넘치도록 담긴 그 오쿠라는 그녀가 오늘 하루 종일 저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습니다. 선물을 사야 한다는 것이 좀 억울했지만, 예수님께서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바뀌셨듯 저도 ‘신부님을 위해’ 따왔다는 그녀의 한마디에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녀의 수고에 대한 연민과 그 한마디 때문에 저는 기꺼이 값을 지불하고 몽땅 사서 수녀님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언제나 인간들의 기도에 시달리고 계실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청원이겠지만 당신만 바라보며 매달리는 우리를 얼마나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시고 기도를 들어 주시는지를 말이죠. 그러면서도 이러한 저희를 얼마나 대견하고 기특하게 여기실지도 말입니다.

아강그리알 미션의 거의 모든 교우들은 생존의 선상을 넘나드는 절대 빈곤 속에 살고 있습니다. 마구간 같기도 하고 헛간 같기도 한 집안에는 대나무침대 하나와 옷장도 없어서 줄을 걸어 얹어놓은 몇 벌의 옷이 세간의 전부이지만, 이들은 그 속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으로 열심히 살아가려 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세상 밖에서 구원이 없듯, 이들의 세상 속에 숨어계신 충만한 구원의 은총을 헤아려봅니다. 다가오는 성탄절, 당신께서 누우실 구유는 어디일까요 예수님? 당신을 기다리는 겸손과 가난한 마음의 구유, 그 어떤 땡볕 아래서의 수고스러움도 마다하지 않고 오직 당신의 길을 준비하는 ‘당신을 위한’ 땀방울에도 함께하소서.

※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자세들을 위해 많은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도움주실 분 031-244-5002 수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 수단의 건기는 이곳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이 열악한 먹을거리 때문에 힘겨워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은 그 속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으로 열심히 살아가려 하고 있음을 느낀다.
 

 
한만삼 신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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