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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수단에서 온 편지] (19) 십자가로 변모한 성지가지

아강그리알-쉐벳에서의 성지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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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기의 절정, 4월입니다. 나이로비에서 돌아온 뒤로 매일 더위와 싸우고 있습니다. 실내온도를 재보면 하루 종일 30℃ 아래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선풍기를 틀어도 따뜻한 바람이 불고, 샤워를 하려고 물을 틀어도 따뜻한 물이 나옵니다. 가끔은 뜨거운 물이 나와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이런 와중에도 일은 계속 됩니다. 쉐벳 공소의 공사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거든요. 한국에서 오신 건설 봉사자들이 건물을 잘 세워주고 가셨지만, 케냐에서 준비한 자재가 늦게 오는 바람에 마무리가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태양광 발전 장치와 물탱크, 펌프 등을 설치하려면 아마도 한 달은 더 지나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저와 표창연 신부는 작년 부활 시기에 이곳에 파견되었기에 처음 맞이하는 성주간이지요. 오늘 주님 수난 성지주일을 맞이하며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성지가지는 어떤 잎을 사용할까, 행렬이 가능할까, 수난 복음은 한국처럼 읽을까?’

저와 한만삼 신부님은 쉐벳 공소에서, 표 신부는 아강그리알 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미사는 콤파운드 바깥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시작 예식과 복음 낭독이 끝나고 성지가지 축복이 있었습니다. 이때 몇몇 봉사자들이 성지가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성지가지를 받아보니 한국에서 사용하던 편백나무가지가 아니라 종려나무(Palm tree) 잎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잎을 받아든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잎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십 개의 십자가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공소 방문을 나가거나 신자들 집에 방문했을 때 방안 한쪽에 걸려있던 십자가였습니다. 우리처럼 십자고상을 구해 집안에 걸 수 없는 이들이기에 이렇게 십자가를 만들어 걸고 다음 해까지 보관을 하나 봅니다.

성지가지 축복이 끝나고 행렬이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행렬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역시 행렬은 무리였습니다. 십자가를 선두로 신자들이 서고 그 뒤로 복사단과 사제단이 서서 행렬을 하는데,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 특히 아이들은 마냥 좋습니다. 줄을 서거나 속도를 맞추어 걷는 건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그냥 성당을 향해 돌진하는데, 아이들을 통제하려던 전교회장 제임스 마투르는 아이들에게 밀려 성당 안으로 사라집니다. 마지막에 선 복사단과 사제단만이 차분하게 행렬을 이어갑니다.

성당 안에 들어가 미사가 계속되고 수난 복음을 읽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한 신부님과 독서자 넷이 함께 복음을 낭독했는데, 솔직히 잘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딩카어로 번역된 것을 읽었거든요.

아강그리알-쉐벳에서의 성주간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발씻김 예식과 십자가 경배, 부활찬송 등 이들과 함께하는 전례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됩니다.

어리숙하고 부족한 저희들의 전례 안에도 주님께서 함께하시겠지요?



※ 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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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casuwonsudan

※ 문의 031-548-0581(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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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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