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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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고 힘나는 신앙-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해설] (29) 전말

십자가 매달리신 주님 곁에 누가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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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복음성가 가수 빌 만이 공연을 마친 뒤, 분장실로 들어왔을 때 한 여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으며, 전혀 볼 수조차 없었다.

빌 만은 공연으로 지쳐 있었지만, 노래 한 곡 불러달라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우렁찬 목소리로 흑인영가 ‘거기 너 있었는가’를 불렀다. 가톨릭 성가책 489장 ‘보았나 십자가의 주님을’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 성가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님 그 십자가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빌 만의 목에 손을 대고 손끝 감각으로 노래를 느끼던 그녀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녀는 수화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광경을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죽으실 때 그리고 살아나실 때…. 한때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지만 이제 나는 성령의 뜻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 나는 이 거룩한 욕심을 따라서 살 것입니다.”

그 여인이 바로 헬렌 켈러다. 얼마나 큰 감동인가! 헬렌 켈러는 손으로 빌 만의 목을 만져 성가 가사를 적확하게 들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삼중고의 아픔을 지닌 그녀였지만, 그 모든 장애를 딛고 일어나 주님 안에서 성령의 뜻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장엄하게 싸워, 결국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기적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오늘도 기적이다.

이제 이 십자가의 역사적 현장으로 시간 이동을 해 볼 차례다. 사도신경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에 해당하는 대목이겠다.

■ 바야흐로 때가 차매

예수님의 전 생애와 활동은 결정적인 ‘때’에 맞추어져 있었다. 이 ‘때’는 철저하고 완전한 실패의 시간이다. 이 ‘때’는 죄로 가득 차고 하느님을 거역하는 세상을 위해 고난을 받으실 시간이었다. 예수님은 이를 예감하고 있었다.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이 권세를 떨칠 때다”(루카 22,53).

‘어둠이 권세를 떨칠 때’, 이 ‘때’는 성부께서도 아드님을 버리셨던 ‘때’였다.

이제 그 수난의 과정을 뒤따라가 보자. 우선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 질문의 덫을 놓았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빼도 박도 못할 고약한 질문을 들이밀었다.

“선생님, 우리들은 로마에 세금을 갖다 바쳐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마태 22,15-22 참조)

“선생님,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는데 만약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을 추수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마태 12,1-8 참조)

“선생님, 간음하다 들킨 여인을 붙잡아 왔습니다. 우리의 모세 율법은 이러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요한 8,1-11 참조)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이러한 질문은 오히려 예수님에게 저들의 문제를 확연하게 드러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당하는 것은 번번이 시비를 걸어오는 쪽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당하기만 하던 저들의 심사가 고울 리 없었다. 그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루카 19,47)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결국 우리로 치자면 국회가 소집되었다. 이를 ‘산헤드린’이라 부른다. 산헤드린은 ‘수석 사제들’, ‘율법 학자들’, ‘백성의 지도자들’로 구성된다. 이들이 공적으로 소집되어 예수 사건을 의결하는 것이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요한 11,47-48).

이를 풀어 말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지금 하여간 해괴망측한 일이 밖에서 진행 중에 있소. 이를 어떻게 할까요? 율법을 막 파괴하고, 엉뚱한 가르침을 전하고, 청중들은 몰려다니고…. 우리가 지금 총독의 치하에 있는데, 로마 정부가 잘못 알면 쿠데타로 알 텐데, 이거 잠자코 있다간 우리까지 피해를 입지 않겠소?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이에 그 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그 자리에 와 있다가 최후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요한 11,49-50).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사제로서 예언을 한 셈이었다.

결국 이 사람 말이 먹혀 들어갔다. 그런데 당시에 유다인이 국회를 소집해서 의결을 해도 이들에게는 행정권이 없었다. 그걸 누가 가지고 있는가? 빌라도다. 그래서 이들이 예수님을 정치범으로 몰아 빌라도에게 고발했다.

이 모든 것을 안 예수님은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신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며 그들의 발을 씻겨주고 그들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는 예식을 거행한다. 이제 때가 되었다.

자기들의 권세를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 한 지도층의 간교한 계략에 넘어간 제자의 배신으로 결국 예수님은 붙잡혀 재판정에 서게 된다. 따르던 제자들은 목숨을 잃을까 봐 도망가서 뿔뿔이 흩어지고, 변호인 하나없이 홀로 법정에 서게 된다. 고발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성명: 예수

출신: 나자렛

죄명: 유다인의 왕 - 백성들을 선동한 정치범

구형: 사형(=십자가형)

고발사유:

-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신앙 전통에 대한 과격한 비판

- 성전 영역 침해 및 난동

- 풍기문란 및 민중선동

로마 총독과 이스라엘 왕은 책임을 면하려고 판결을 서로에게 미루었다. 그러나 끝까지 예수님을 고발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속셈에는 빌라도도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메시아로 기대하다가 실망해 버린 군중들은 “죽이시오”하고 외쳐댔다. 결국 지배국 로마 총독 빌라도는 사형 선고를 내린다. 예수님은 정치범이나 살인죄를 저지른 극악무도한 강도들에게 주어지는 십자가형에 처해진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그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타라고 한다. 거기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도 예수님을 가운데로 하여 이쪽 저쪽에 하나씩 못박았다.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요한 19,17-19).

숨을 거둔 예수님에게는 세상에 올 때처럼 세상을 떠날 때도 머리 두실 곳이 없었다.

다행히 의회 의원이었던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거두었다.

“요셉은 아마포를 사 가지고 와서, 그분의 시신을 내려 아마포로 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모시고, 무덤 입구에 돌을 굴려 막아 놓았다”(마르 15,46).

우리는 사도신경을 바치면서 이 전 과정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로 요약하여 고백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 골고타 수난 여정에 담긴 엄청난 슬픔의 무게를 내려놓지 못한다. 그 슬픔에 비례하는 예수님 사랑 역시 사도신경의 한 자 한 자에 선연하게 배어 있다.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



가톨릭신문  201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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