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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박해기 - 강제 수용소의 선교사들] (3) 투옥돼 신문받고 추방 당해

투옥된 성직자들, 집단 구타 당해/ 쇠사슬 묶인 채 암실에 갇히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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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뿐 아니라 성직자들 중에도 리베리 공사 추방을 반대하다가 투옥된 이들이 많았다. 공산당들은 당시 신자들에게 리베리 공사 추방에 서명하는 것은 곧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선전했다. 그러자 어떤 신자는 서명을 거부하며 ‘나는 리베리가 누군지 모른다’고 응답했고, 어떤 이는 ‘나는 글을 모르니 당신이 나를 대신해 서명하세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리베리 공사는 1951년 6월 28일 체포돼 10시간 동안 철야 신문을 당하고 추방됐다. 리베리 공사와 비서 인덴 신부, 회계 카프리오 신부 등 세 명은 무장한 특무원의 감시를 받으며 3등 열차를 타고 상해를 경유해 홍콩에 도착했다. 당시 리베리 공사는 기자들이 공산당의 박해에 대해 질문을 하자, 침묵으로 일관하며 미소만 지었다고 한다.

라자리스트회 화북(華北) 성회장(省會長) 띠쉬 신부도 공산당에 의해 추방돼 1954년 4월 23일 천진(天津)에서 배를 타고 29일 홍콩에 도착했다.

띠쉬 신부는 지난 1951년 7월 25일 오후 4시 공안원들이 북당(北堂)으로 와서 띠쉬 성회장 신부와 중국인 신부 몇 명을 체포하여 투옥시켰다고 증언했다. 감옥에는 이미 14명의 신부가 투옥되어 있었다. 띠쉬 신부가 감방(監房)으로 들어가자, 수인들이 전부 몰려와서 그를 집단 구타해 그는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고 한다. 띠쉬 신부는 여러 차례 장시간에 걸쳐 신문을 받았다고 밝히고, 이때 다른 신부들도 구타를 심하게 당했다고 전했다.

강서성 여강(餘江)교구 교구장 라자리스트회 미국인 칼 윌리엄 퀸 주교도 강제 추방돼 1951년 10월 6일 홍콩에 도착했다. 퀸 주교가 증언하기를, 1951년 9월 29일 퀸 주교와 스미스 신부, 크라프 신부가 함께 3시간 동안 인민재판을 받았는데 군중들이 미친 듯이 사형을 시키라고 소리 질렀다고 한다. 그러자 중국정부는 인심을 쓰는 척하며 “공산정부는 당신들을 위해 인자하고 관대하게 추방형을 내린다”고 생색을 냈다고 한다.

벨기에 출신 갈(중국성 葛) 신부는 1951년 3월 7일 투옥되었는데 좁은 감방에 많은 사람들을 감금시켜 두 다리를 펼 수가 없었다. 갈 신부는 여러 번 신문을 받았으며 손발은 쇠사슬에 묶여 암실에 갇혔다고 밝혔다. 갈 신부를 가둔 이들은 그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기 위해 머리 위에 강제로 강한 직사광선을 비춰댔다. 또 신문할 때 갈 신부가 대답을 하지 않으면 손에 걸린 쇠사슬을 조이며 고통을 가했다. 갈 신부는 이런 신문을 3주야 동안 받았으며, 스스로는 총살형을 당하거나 고문이 심해 옥사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1951년 한 해 동안 중국에서는 42명의 외국인 주교와 1200여 명의 신부가 추방당했다. 또 300여 명의 신부는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중국정부는 이듬해 “외국인 선교사들은 전부 중국을 떠날 것이며 중국 인민과 왕래를 일절 금한다”라고 발표했다. 이후 중국정부는 대혁신운동을 벌이고 외국인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신자들을 체포했다.



서양자 수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만 유학을 거쳐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에 소속돼 있다. 저서로는 「중국천주교순교사」,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등이 있다.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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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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