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중국 현대 박해기 - 강제 수용소의 선교사들] (4) 미국인 선교사의 박해

매달리거나 무릎 꿇은 채 심한 구타 당해/ 식사 전 성호 긋는 것 보고 두 손 묶기도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양주교구 파이 주교.
공산주의 정부는 미국인 선교사에 대해서는 더욱 심각한 박해를 가했다.

헝가리 출신 히폴리투쉬 페렌치 부주교와 헝가리 출신 회장 알비누쉬 툰 신부는 공산당이 요구하는 ‘탄백서’(坦白書, 자술서)를 쓰고 추방돼 1952년 홍콩에 도착했다. 당시 헝가리도 공산화되어 헝가리 신부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미국으로 갔다. 이어 강문(江門)교구 교구장 메리놀회 어덜프 조앤스 패스챙 주교(미국)도 추방돼 홍콩에 도착했다. 패스챙 주교는 중국정부는 ‘원조’(援朝, 한국전쟁 때 북한을 돕는다는 뜻)를 명목으로 교회 재산을 전부 몰수했다고 증언했다.

한중(漢中)교구 외국인 신부들은 1951년 전부 연금을 당했다. 섬서성 한중(漢中)교구 교구장 요셉 마지 주교(이탈리아)와 하남성 귀덕(歸德)교구 교구장 아우구스티노회 알르뚜오 뀐따니야 주교(스페인), 보로띠 신부, 까따네오 신부는 1952년 홍콩으로 왔는데, 그들은 교구 내 외국인 신부들이 1951년 6월 21일 전부 연금을 당했었다고 밝혔다. 마지 주교와 노르디오 신부, 코르벨라 신부, 몬스끼니 신부는 고발대회에도 나가야 했는데, 그들에게 주어진 죄목은 ‘혁신교회 반대’, ‘고아 학살죄’, ‘성모군 조직죄’였다고 한다. 공산당들은 특히 고아들을 돕던 선교사들에게는 무조건 고아 학살죄를 씌워 추방했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창설자인 한양(漢陽)교구 초대 교구장 애드워드 갈빈 주교도 역시 추방돼 1952년 9월 10일 홍콩에 도착했다. 그는 1927년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선교회에 필요성을 느껴 귀국, 성골롬반외방선교회를 창설한 바 있다.

성모성심회 신부들이 홍콩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몸에는 심하게 고문당한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수갑을 너무 단단하게 채워 혈액순환이 안 되어 다리에는 종기가 생겼고, 매달리거나 무릎을 꿇은 채로 구타당한 상처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들은 편태로 맞고, 매달리거나 무릎을 꿇은 채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던 성모성심회 신부 23명은 모두 구속됐는데, 잠을 못자는 고문까지 당해야했다. 게다가 한 신부는 신경을 자극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뽑아대는 고문으로 20일 동안 한숨도 못 자고 괴롭힘을 당했다.

각종 고문들은 신체적 외상뿐 아니라 정신적 후유증도 심각하게 남겼다. 예수회 시카르드 신부는 추방돼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공산당은 ‘진보교회(애국교회)’를 세우려다 실패하자 그 원인을 시카르드 신부에게 돌리고 그를 투옥시켰다. 그리곤 시카르드 신부가 식사 전에 성호를 긋는 것을 보고 마승으로 두 손을 묶어 놓았다고 한다. 신부가 5일 동안 단식을 하자 그제야 마승을 풀어줬다가, 신부가 다시 성호를 긋자 소량만 남기고 대부분의 음식을 빼앗아버렸다고 한다. 보경감목구 초대 교구장 라디쉬라우쉬 롬보쉬 주교는 초기엔 일본군에 의해 사목활동을 방해받았고, 이후 공산당의 박해로 결국 추방됐다.


서양자 수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만 유학을 거쳐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에 소속돼 있다. 저서로는 「중국천주교순교사」,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등이 있다.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12-25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8

시편 31장 18절
주님, 제가 주님을 불렀으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