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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124위 순교지를 가다] <19> 대구 관덕정 순교기념관 경상감영 옥터, 오류정

을해박해·정해박해로 관덕정·경상감영 옥터 등에서 복자 20위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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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덕정순교기념관

1814년 조선 전역에 큰 흉년이 들었다. 문전옥답이 즐비한 마을조차도 기아를 피해가지 못했다. 게다가 수해까지 겹쳐 굶어 죽는 이들이 넘쳐났다. 청송 노래산 교우촌(현 경북 청송군 안덕면 새노래길)도 흉년에 시달리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당시 이 교우촌에 드나들며 고기를 팔거나 구걸을 하던 전지수는 흉년으로 신자들의 애긍이 줄어들자 구걸에 만족하지 못하고 교우촌을 약탈할 심보로 신자들을 밀고하려는 생각을 품기에 이른다. 일설에는 그가 배교자라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그는 1815년 청송현 관장에게 천주교 신자들이 노래산에 산다는 사실을 알린다. 그는 그해 예수 부활 대축일에 노래산 교우촌에 모여든 신자들을 한꺼번에 체포하라고 부추기고는 포졸들과 함께 들이닥쳐 신자들을 모조리 붙잡는다. 이것이 을해박해의 시작이었다. 노래산 교우촌 신자들이 맨 먼저 체포됐고, 진보현 머루산(현 경북 봉화군 석보면 포산길), 영양 곧은정(현 경북 영양군 수비면 낙동정맥로와 봉화군 재산면 새골길 경계), 우련밭(현 경북 봉화군 재산면 새골길) 교우촌 신자들이 줄줄이 잡혀들어갔다. 무려 71명으로, 이 중 33명이 경상감영으로 이송됐다. 이로써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충청도 내포에서 흘러든 신자들이 형성한 경북 동북부 산간지역 교우촌이 붕괴됐다.

이어 1827년 정해박해로 경북 상주 멍에목(현 경북 문경시 동로면 문안길) 교우촌 등지에서 31명이 체포됐다. 이 중 25명이 석방됐고, 나머지 6명은 순교했다.

연이은 두 박해의 순교터가 바로 대구 경상감영 일대다. 이에 대구대교구에선 두 박해 순교자 20위(울산 장대 순교자 3위 포함)의 시복을 추진했고 전원이 시복됐다. 다만 1866년 병인박해 당시 관덕정과 오류정에서 각각 순교한 2위는 마산교구에서 시복을 추진해 대구의 복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영남 제일의 순교 1번지’ 관덕정으로 향하다

한때는 ‘관덕당’이라고도 불린 관덕정 순교터는 대구읍성 남문 밖 아미산 자락 신천(新川) 지류 변에 있다. 평상시엔 군사들 훈련장이었고, 때론 군관과 별무사를 선발하던 곳이었다. 동시에 국사범의 처형장이었는데, 서학, 곧 천주교 신자들도 관덕정에서 순교의 화관을 썼다.

관덕정에서 피를 흘린 순교자는 17위다. 이 가운데 지난 8월 시복된 11위 중 김희성(프란치스코)과 구성열(바르바라) 등 7위는 을해박해로 체포돼 1816년 12월 19일에 순교했고, 이재행(안드레아)과 박사의(안드레아), 김사건(안드레아) 등 3위는 1827년 정해박해 때 체포돼 12년간이나 잡혀 있다가 기해박해 때인 1839년 5월 26일 순교했다. 또 마산교구에서 시복을 추진한 박대식(빅토리노)은 병인박해 때인 1868년 10월 12일에 피를 흘렸다.

당시 관덕정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듬해 친일파였던 경상북도관찰사 서리 겸 대구군수 박중양이 고종황제의 윤허 없이 대구읍성을 허물면서 관덕정도 사라졌다. 신천 지류 하천변도 복개돼 도로로 변했다. 지금은 관덕정 순교터로 고증된 곳에 지하 1층에 지상 3층의 한옥 누각 양식의 관덕정순교기념관(관장 최호철 신부)이 들어서 있다. 대구광역시 중구 관덕정길 11이다.

이 기념관은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기념해 대구대교구 성지 개발 사업에 따라 건립됐다. 1986년에 착공해 1991년 5월에 축복식을 가졌다. 515㎡(155.78평) 부지에 건축 연면적 997㎡(301.59평) 규모다. 교구는 축복식에 앞서 그해 1월 이윤일(요한) 성인의 유해를 봉안했다. 지하 경당엔 유해실이 있고, 그 곁에 순교 전시실이 있어 순교 신심을 전한다.

124위 시복을 기념, 관덕정순교기념관은 지난 8∼9월 두 달간 ‘순교자의 이끌림, 124위!’라는 주제로 다양한 시복 경축및 순교자 현양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체험 프로그램으로 ‘천국으로의 행진’을 비롯해 음악 순례의 메아리, 성화로 만나는 20위 순교복자 전시회, ‘순교자, 영혼의 햇살’ 백일장 등을 가졌고, 대구 순교 복자 20위의 이름과 삶을 익히는 ‘순교자랑 나랑!’ 등 개인 프로그램도 함께 기획해 순교자 현양에 힘을 쏟고 있다.



경상감영 옥터는 흔적조차 남지 않고

관덕정을 돌아본 뒤 배수흠(루카, 68) 관덕정순교기념관 운영위원회 총무와 함께 관덕정에서 1.36㎞밖에 떨어지지 않은 경상감영으로 향했다. 공원에 들어서니 잘 정돈된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공원으로 얼마나 잘 꾸며져 있는지, 관찰사가 집무하던 선화당 앞에서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감내하던 순교자들의 용덕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 곁에 있는 관찰사 처소 징청각과 선정비를 모아놓은 비림 등을 돌아보고 옥터로 발길을 돌렸다.

 
 

▲ 관덕정순교기념관 운영위원회 배수흠(왼쪽) 총무가 대안성당과 천리교 대구교회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 경상감영 동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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