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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후손답게 체포 위기에도 성체 모신 ‘참 목자’

[평양의 순교자들](11) 이재호 신부




순교자의 후손답게 묵묵히 순교의 길을 걸어간 사제. 남달리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에 특별한 열성을 보였던 사제. 수도자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청빈한 삶을 살다간 사제. 이재호(알렉시오) 신부다.

30년에 불과했던 짧은 삶이었지만, 그의 한 생애는 오롯이 예수님을 향한 삶이었다. 사제로 살다간 기간도 3년 9개월 남짓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착한 목자로 살았다. 마침내 민족 분단의 비극 속에서 순교의 용덕을 냈고, 공산주의자들에게 연행돼 순교했다.

이기헌 주교의 삼촌이자 순교자 집안 후손

이재호 신부는 1919년 4월, 3ㆍ1 운동 직후에 황해도 안악군 문산면 원성리(현 황해남도 안악군 금강리)에서 태어났다.

유아 세례는 매화동본당에서 받았다. 안중근(토마스) 의사의 부친 안태훈(베드로) 옹과 민영구(베드로) 전교회장 등 평신도들의 선교 투신이 있었던 그 성당이다.

아버지는 전주이씨 의안대군(태조 이성계의 이복동생) 종중 이태환(시메온), 어머니는 임용환(요안나)이었고, 친가와 외가, 두 집안 모두 순교자 집안이었다. 아버지는 1866년 10월 병인박해 당시 순교자이자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로 시복을 추진 중인 이의송(프란치스코, 의안대군 17세손)과 김이쁜(마리아) 부부, 아들 이붕익(프란치스코) 순교자의 후손이었고, 외가 또한 순교자가 있었다는 것이 이 신부의 조카인 이기헌(의정부교구장) 주교의 증언이다. 외가 쪽에선 수도자가 여럿 나왔는데, 이 가운데 이 신부의 이모인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임준성(마리아) 수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임선영(도로테아) 수녀 등이 잘 알려졌다.

어린 시절의 이재호 신부에 대한 일화는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매우 착하고 인정이 많았다고 한다. 때로는 엉뚱하고 대담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린 시절, 길에서 돈을 주워 파출소에 가져다줬으나 끝내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순경과 돈을 나눠 갖기도 했고, 학교 다니는 길목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부랑아를 혼내주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신앙 교육을 철저히 받았던 소년 이재호는 평양역 앞 오성보통학교에 입학했다가 신학교에 들어갈 준비를 하면서 성모보통학교로 전학했고 1934년 서울 동성상업학교 을조(소신학교 과정)에 입학해 신학도로서 삶을 시작했다.

조용한 성품이었던 이재호 신학생은 방학 때면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를 모시고 살았던 셋째 형(이재풍 베네딕토)과 형수(정용철 수산나, 이상 이기헌 주교의 부모)를 도왔고, 조카들을 잘 업어주곤 했다. 대신리본당 주임이던 김필현 신부가 그의 집을 찾아왔을 때도 조카를 등에 업고 본당 신부를 맞을 정도로 소탈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 말이라 식량이 배급제로 공급돼 쌀을 구하기가 힘들었는데, 형수가 자신의 친정에서 쌀을 구해와 떡을 해주자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해 신학교에 돌아가서도 감사 편지를 쓰는 자상한 면모도 보였다.



공산당의 견제에도 신설 본당 사목에 열심

그가 사제품을 받은 건 해방 이후다. 덕원신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1946년 3월 1일 평양 대신리성당에서 평양대목구장 홍용호 주교 주례로 사제품을 받았다. 수품 직후 자신의 출신 본당인 대신리성당에서 봉헌한 첫 미사에서 "'사제는 사람 낚는 어부'라고 배웠지만, 사람 낚는 어부는 못 돼도 다랑치(다랑어 또는 참치)는 들고 다니는 어부는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던 강론 내용 일부가 오늘까지 전해진다. 수품 직후, 이 신부는 관후리본당 보좌로 부임, 일제강점기에 빼앗겼던 성당 부지에 짓는 대성당 신축 뒷바라지에 전력을 다했다. 자신이 그린 초상화를 방에 걸어둘 만큼 그림을 좋아했지만, 그림 그릴 짬도 내지 못하고 성당 신축 봉사에 나선 교우들과 함께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그러다가 건강이 나빠져 1947년 10월부터 1년 동안 서포본당 주임 겸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지도 신부로 서포성당에 부임, 조용하게 사목했다. 박해는 계속됐지만, 사제로서 그의 삶에서 가장 평온했던 시기다.

이 신부는 1948년 10월 서포본당을 떠나 평양 기림리본당으로 부임한다. 기림리성당은 원래 1936년 요양원(Sanatorium)으로 신축돼 사용하던 건물을 1940년 1월 본당으로 설정한 곳이었다. 서평양 지역의 발전을 내다보며 설정된 신설 본당이었지만 공산당 독재와 박해로 본당으로 발전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이 신부는 전임 신부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공동체를 이룬 900여 명의 신자들에 대한 영신 지도는 물론 전교에도 힘을 기울였다.



도피 권유 뿌리치고 신자 위해 본당에 남아

1949년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정치보위부원들의 철저한 감시로 이 신부는 사목에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그해 5월 14일 평양대목구장 홍용호 주교가 피랍되고 대목구의 주요 성직자, 신자들이 체포된 뒤에는 한밤중에도 이 신부의 사제관에 들러 사람 수와 이름을 조사 확인하는 등 압력을 가했다. 당시 평양대목구 내 본당엔 청년회원들이 교회와 본당 신부를 지키고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제관에서 숙직했지만, 기림리본당만은 사정이 달랐다.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에 김영근(베다) 부제와 예비신학생인 임종훈(요셉)만이 사제관에서 기거하며 함께했고, 함흥대목구에서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가 해산된 뒤 기림리성당에 와 있던 이모 임준성 수녀와 여동생이 함께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에 두 형이 이 신부의 안전을 우려해 이남으로 도피할 것을 권고했지만, 이 신부는 "어떻게 양 떼를 버리고 제가 피하겠습니까?" 하며 본당에 남았다.

그해 12월 7일 새벽 1시께, 정치보위부원들이 기림리본당 사제관에 그를 체포하러 들어왔다. 전날, 불편한 몸으로 판공성사를 베푼 이 신부가 저녁 식사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던 상황이었다. 그때 사제관 뒷문을 두드리는 소란에 살림을 돌보던 임 수녀가 정문을 나가 뒷문으로 가니 정치보위부원들이 와 있었다. 그들이 "이 신부, 집에 있소?" 하며 앞장서서 사제관으로 들어서자, 이 신부는 "나 있다고 하세요" 하고 말하며 의연한 자세로 화장실로 향했다. 이에 보위부원 중 한 명이 이 신부를 막아서자 이 신부는 소변을 보고 나오겠다고 하며 그들을 안심시킨 뒤 볼일을 보고 나와 곧장 성당으로 향했다. 보위부원들이 다시 가로막자, 이 신부는 "나를 따라오라"며 주저 없이 성당으로 들어가 감실에서 성합을 꺼내 성체를 모셨다. 이모 임 수녀, 여동생 등에게도 성체를 모시도록 한 뒤 다시 사제관으로 돌아와 임 수녀가 미리 준비해뒀던 두꺼운 솜옷을 입었다. 임 수녀는 당시 무슨 핑계를 대든지 사제관 밖으로 나가 이 사정을 본당 회장에게 알리려 했으나 보위부원들이 있어 그러지 못했다. 이 신부는 결국 새벽 5시 30분께 연행됐다. 때마침 새벽 미사에 나오던 한 할머니가 이 신부를 체포해 가는 걸 보고 몸으로 막아섰다. 보위부원들은 할머니를 넘어뜨리고 발길질을 한 뒤 이 신부를 지프에 태워 사라졌다. 이 신부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이 같은 사실은 '원산 수녀원 수녀들의 수난기'라는 부제가 붙은 「어둠에서 은총의 빛을 따라」(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펴냄)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 신부는 평양 인민교화소 특별 정치범 감옥에 투옥됐다가 1950년 10월 20일 국군의 평양 입성 직전에 총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자료 제공=평양교구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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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  2017.06.1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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