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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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떠나는 하늘 소풍] 하. 가정 호스피스, 지역사회로 파고들어

호스피스 사각지대, 지역사회가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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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스피스는 종합병원 중심의 인력 구조라 지방의 경우 호스피스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공공형 호스피스 등을 통한 사회 약자에 대한 돌봄 확산이 시급하다. 삽화=문채현





가정 호스피스는 2016년부터 정부 시범사업으로 21개 의료기관에서 시행 중이다. 병원에 입원해서 받는 호스피스처럼 건강보험 적용을 받기 위해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의료기관에서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환자의 가정을 방문해 호스피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대도시가 아니면 가정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기가 어렵다. 종합병원을 중심으로 호스피스 인력이 구성돼있고, 의료기관에서 모든 지역을 방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가정 호스피스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가정 호스피스 정착을 위한 과제를 알아본다.

김유리 기자 lucia@cpbc.co.kr





병원이 멀면 방문할 수 없어

경기도 포천 모현센터의원 유리라(젬마,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에게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말기 암 환자를 돌보고 있는 보호자 A씨였다. 일산에 사는 그는 포천에 있는 모현센터의원 의료진에게 가정 호스피스를 받을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경기도 포천에서 일산까지는 편도로만 1시간 이상 걸린다. 길이 막히면 2시간이 훌쩍 넘는다. 유 수녀는 일산의 가정 호스피스 시범기관을 소개해 줬다. 그러나 A씨는 가정 호스피스를 받을 수 없었다. 유 수녀가 알려준 시범기관은 일산 시내만 방문할 수 있다면서 일산 외곽에 위치한 A씨네 방문을 고사했다.

가정 호스피스는 의료진이 환자의 집으로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해당 의료기관마다 ‘반경 몇㎞ 이내’, ‘소요 시간 몇 분 이내’ 식으로 기준을 세워둔다.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 한 명을 방문하는 데 온종일 시간을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A씨는 “병원에서는 더 치료할 게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집에선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유 수녀는 “호스피스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면서 “지금처럼 호스피스 의료기관이 대도시에 집중된 상황에선 혜택을 못 받는 이들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역사회 호스피스 모델’은

A씨처럼 가정에서 호스피스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지역에 호스피스 의료기관이 없거나 집에서 돌봐줄 가족이 없는 이들이다. 대안은 없을까. 부산광역시 호스피스완화케어센터(센터장 김숙남)에서는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이 인간답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보건소 중심의 공공형 호스피스를 통해서다.

김숙남 센터장은 “보건소에서 파악하고 있는 저소득층이나 홀몸노인 중 암을 앓고 있는 가정에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를 파견한다”며 “지역 기반의 방문 호스피스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시내 16개 보건소에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를 파견해 취약계층을 우선으로 돌보는 것이다.

부산 호스피스완화케어센터가 시행하는 보건소 중심의 공공형 호스피스는 세 가지 측면에서 차별점을 두고 있다. 첫째, 보건소를 중심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역사회 중심으로 이뤄진다. 김 센터장은 “보건소는 지역적인 편중이 없고, 지역 주민들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라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정 지역에 몰려 있지 않기 때문에 돌봄이 필요한 환자들을 촘촘하게 보살필 수 있다.

둘째, 사회적 약자를 먼저 배려한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돌봐줄 가족이 없는 환자들을 우선적으로 챙긴다. 호스피스 간호사들은 환자 가정을 방문하면서 병원에 혼자 가기 힘든 환자는 병원에 데려다 주고, 약은 잘 챙겨 먹는지 당장 생계에는 문제가 없는지를 지속해서 살핀다. 먹고 사는 문제부터 고통을 줄이는 방법, 죽음을 받아들이는 문제까지 전방위적인 돌봄을 제공한다.

셋째, 말기 암 환자로 국한된 호스피스 돌봄 대상자의 폭을 더 넓혔다. 초기 암환자들도 돌보는 것이다. 환자 상태가 악화하면 병원에 입원하도록 하고, 다시 좋아지면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환자 한 명 한 명을 돌볼 수 있도록 했다. 죽음이 너무 임박해서 호스피스 병동을 찾을 경우엔, 호스피스 돌봄을 충분히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지방자치단체가 가정 호스피스 사업을 지원하는 사례도 있다. 대전광역시는 올해부터 충남대학교병원에 가정 호스피스 전문 인력을 보조하고 있다. 덕분에 충남대병원은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 2명과 사회복지사 1명을 충원했다. 병원이 가정 호스피스에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시에서 이를 지원한 것. 자치단체 예산으로 가정 호스피스 사업을 지원한 것은 대전시가 최초다. 대전광역시 보건정책과 박미정 주무관은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많은데, 병원에서는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가정 호스피스에 손을 못 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병원에 호스피스 전문가와 사회복지사 비용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 김유리 기자



취재를 마치며

호스피스 취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방문한 곳은 병원이다. 어쩌면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지 취재를 갈 때마다 놀라곤 했다. 팔이나 다리 하나가 아픈 정도가 아니라,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환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놀라웠다.

호스피스 병동에 오기까지 환자들은 여러 병원을 거친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 운영하는 병원, 종양내과가 가장 유명한 병원, 말기 암 환자가 기적적으로 치유된 병원…. 환자들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각종 검사와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이들이 호스피스 병동에 와서 후회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만 고민했지, 어떻게 죽을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정 호스피스 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항암 치료를 받던 병원에서 ‘집에 돌아가라’는 말을 들은 환자는 마치 그것이 사형 선고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병을 치료하지 않는 것은 마치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죽음을 두려워할까. 취재하면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대한민국에서는 2분마다 1명씩 세상을 떠난다. 이처럼 죽음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누구나 겪게 되는 죽음, 그리고 당연히 슬플 수밖에 없는 죽음이지만 평소에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 둔다면, 죽음도 ‘아름다운 이별’이 될 수 있다. 죽음이 어느 날 닥치는 ‘재앙’이 될지, 아니면 삶을 완성하는 ‘선물’이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김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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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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