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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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땅과 맞닿은 섬, 연평도 복음화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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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뱃길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연평도. 북한에서 불과 3.4㎞ 떨어진 최북단 접경지대인 이 섬에 복음의 씨앗이 전해진 지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연평도본당(주임 민경덕 신부)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9월 8일 성당에서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감사예술제와 축하연을 진행했다. 이어 성당 마당에서는 ‘100주년 기념 십자고상’ 축복식을 거행했다.

이번 행사에는 교구장 정신철 주교를 비롯해 강의선 신부(원로사목자) 등 교구 사제와 수도자, 신자 등 270여 명이 함께했다. 1963년 사제품을 받은 강 신부는 본당 출신 첫 사제로, 많은 자료와 증언을 통해 연평도 지역 복음선포 역사를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감사미사는 정신철 주교가 주례하고, 교구 사제단이 공동 집전했다. 정 주교는 강론에서 ‘평화’를 염원했다. 정 주교는 “연평도는 우리나라 분단의 아픔과 긴장이 담겨 있는 곳”이라며 “연평도에 말씀의 불꽃이 계속 타오르는 이유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에페 2,14)라는 성경구절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며 평화를 구하고, 주님 안에서 서로를 위한 평화의 도구가 되길 바란다”며 “연평도가 ‘영원히 평화로운 섬’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 평화의 은총을 빌자”고 당부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인천교구는 수도자를 파견해 평화와 화합, 일치를 위한 기도를 봉헌했다. 본당 신자인 서은미(모니카)씨는 “연평도 주민들은 평화를 원한다”며 “다시는 이곳에 포가 떨어지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의선 신부는 축사에서 “사랑은 이해하고, 용서하며 협력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좀 더 진실하게 하느님 말씀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하나 되는 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사 후 이어진 감사예술제는 짧게 깎은 머리의 해병대 등 군인들, 주일학교 아이들과 신자들이 한데 어우러진 축제의 장이었다. 본당 신자들과 군인들이 결성한 YP(연평)밴드를 비롯해 사목회, 성가대, 초등부와 중·고등부 그리고 예그리니 기악반 주일학교 아이들이 다채롭게 무대를 꾸몄다. 또 서상범 신부(원로사목자)는 하모니카 연주를, 김재민(요한) 해병은 독창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루 전인 7일에는 본당신자 7명이 견진성사를 받았다. 현재 연평도본당 신자 수는 420여 명이다. 실질적인 미사 참례자 수는 주일 120여 명, 평일 15명 정도다. 꽃게철인 4~6월, 9~11월에는 평일 미사에 8명 정도가 참례한다. 예비신자 수는 지역적 특성상 일정치 않다. 일하러 들어오는 외지인이나 군인들이 많아 꾸준히 교리를 받기 쉽지 않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민경덕 신부는 ‘선(先)세례 후(後)교리’를 한다. 그는 연평도 지역 군인사목도 담당하고 있다.

인천교구에는 서해 5도를 중심으로 많은 신앙 유산이 전해오고 있다. 연평도는 평신도에 의해 복음이 전해진 곳으로, 100년 동안 신앙의 불꽃을 이어가고 있다. 연평도에 처음 복음을 전한 이는 평신도 고(故) 전응택(바오로)이다. 1917년경 입도한 그는 1918년 곳곳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1919년에는 그 결실 중 하나로 신자들이 자력으로 초가집 20평 남짓의 공소 강당을 건축했다. 1922년 공소 부설 4년제 사립 초등교육기관 해성강습소가 개설됐으며, 1940년에는 가톨릭 청년회를 조직했다.

연평도본당은 1958년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2년 동안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초대 주임은 강주희 신부였으며, 6·25전쟁으로 옹진지방에서 온 피란민들이 정착해 섬의 인구는 1만5000명, 신자 수는 1500명까지 늘어났다. 1959년 삼위일체를 주보로 정하며 연평도성당을 봉헌했고, 1961년 인천교구 설정과 함께 교구에 편입됐다. 1968년 덕적도본당에 공소로 편입됐지만, 이후 주안1동본당 소속 공소 등을 거쳐 1998년 본당으로 재승격 됐다.




■ 연평도본당 주임 민경덕 신부

“악기 배우러 왔다 세례받는 아이들 주일학교에 정성 쏟으며 희망 심죠”


“우리 아이들 너무 예쁘지 않나요?”

연평도본당 주임 민경덕 신부는 본당 사목을 하며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장 많이 갖는다. 도서지역은 고령화가 빨리 진행돼 아이들이 귀하기 때문이다. 그가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다가가기 위해 택한 것은 ‘음악’이다. 실제로 본당 예그리니 기악반 주일학교 아이들은 9월 8일 감사미사 때 반주를 하기도 했다.

“악기 배우러 왔다가 세례 받은 아이들이 꽤 있습니다. 세례 받은 아이들은 복사단으로 영입하죠. 현재 복사단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20여 명 입니다.”

공군 출신인 민 신부는 2년 전 연평도본당 주임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 당황했다. 여느 국민들처럼 포격 사건 외에는 어떤 지역인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신부인 저도 배울 점이 많은 공동체”라고 말했다. 신자들이 냉담했던 이들을 다시 교회로 불러들이고, 서로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모습 등을 많이 보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연평도 지역 복음선포 역사가 평신도에 의해 시작된 점에서 한국 천주교의 태생과 닮아 있다”고 설명했다.

“연평도 지역은 성직자나 수도자, 선교사가 아니라 평신도가 스스로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찾아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는 점이 의미가 있습니다. 연평도 복음선포 100주년을 맞아 영광이고 은총입니다. 자랑스러운 교구 안에서 믿음직스러운 본당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제의 삶으로 갚아내겠습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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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8-09-1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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