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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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22)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시는 성모님

우리 구원의 전구자요 중재자, 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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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흑사병 영향으로  통교 창구 절실

교회 역사를 시대ㆍ시기별로 구분할 때 1세기 말 사도 시대 이후부터 7~8세기까지를 ‘교부 시대’ 또는 ‘고대 교회’라고 합니다. 이 시기 교회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두 가지 믿을 교리를 선포합니다. 바로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평생 동정녀’라는 신앙 고백입니다. 하지만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1854년 교의 선포)와 ‘승천’(1950년 교의 선포)에 관해서는 근대에까지 신학자들 사이에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성경을 근거로 이를 증명하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학자들 사이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는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와 승천에 관한 신심이 널리 퍼져 축일 전례를 거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2세기부터 15세기까지는 ‘마리아의 시대’라 불릴 만큼 성모 신심이 대중화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성모님께서 교회와 인간을 위해 하느님께 그치지 않고 전구하시며 우리에게 주님의 은총을 전해 주신다는 신심이 확산되었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요한 2,1-11)에서 볼 수 있듯 자비로우신 성모님께서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께 우리 구원을 끊임없이 청하신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를 ‘마리아의 중재성’이라고 어렵게 말하고 있습니다.
 

유럽 전체가 그리스도교 사회인 이 시기에 왜 중세 사람들은 마리아의 전구를 갈구했을까요. 당시 유럽은 전쟁과 흑사병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었고, 흑사병이 수시로 창궐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고 결혼을 죄악시하는 카타리파 이단이 생겨나는 등 어수선했습니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선 무엇보다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했습니다. 마치 수도꼭지를 틀면 신선한 물을 바로 받아 마시듯이 주님의 은총을 직관으로 체험할 수 있는 ‘통교’의 창구가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중재자이신 성모 마리아에게 의탁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중세 사람들은 점차 성모 마리아를 ‘자애로우신 어머니’로, 주님은 종말에 심판자로 오실 ‘그리스도 왕’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 타데오 디 바르톨로,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시는 성모 마리아’, 템페라, 1400년, 리전 오브 아너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미국.

모성애 넘치는 모습으로 그려진 성모

이러한 시대상과 성모 신심은 교회의 성미술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모성애가 넘치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성모 마리아가 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인간의 너무나 인간적인 표현이 바로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시는 성모 마리아’ 그림입니다. 이 도상(圖像)은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부터 이탈리아에서 등장합니다. 존엄하신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칭얼대는 자식에게 부끄럼 없이 어디서건 젖을 물리는 여느 어머니처럼 가슴을 드러낸 채 아기 예수에게 젖을 물리십니다.
 

몇몇 미술사학자는 이 도상이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제국에서 숭배된 이시스 여신이 아들인 태양신 호루스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다수의 미술사학자는 성모 신심을 통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본고장인 토스카나와 움브리아 지방에서 자생으로 도상이 발전했다고 설명하고 있어 이어 관한 연구는 더 진전되어야 할 듯합니다.
 

이 도상은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서양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6~1337)와 그의 문하생들이 그린 이탈리아 그레치오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의 구유 동굴 프레스코에서 그 시작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레치오수도원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처음으로 구유 예식을 거행한 장소로 유서 깊은 곳입니다.
 

조토에 관해 여러 차례 설명했기에 이번 호에서는 후대 화가를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시에나 출신의 화가인 타데오 디 바르톨로(Taddeo di Bartolo, 1363~1422) 입니다. 타데오는 주로 시에나와 피사, 산 지미냐노, 볼테라 등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활동했습니다. 조토의 파도바 아레나 경당에도 작품을 남긴 그는 제단화로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시는 성모 마리아’ 템페라 작품을 1400년도에 남깁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천상 모후의 관을 쓰고 계신 성모님께서 가슴을 드러내시어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시려 하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성모 품에 안겨 왼손으로 젖을 잡고 막 먹으려 합니다. 이 도상에서 눈여겨볼 것은 성모님의 젖무덤이 유난히 작고 비정상적이라 할 만큼 상체 위쪽에 있습니다. 이는 성모님의 몸을 육감적으로 연상하려는 의도를 막으려는 조치라고 미술사학자들은 해석합니다. 또 하나는 초기 르네상스 작품 같지 않게 세밀함과 입체감이 다소 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성모님이 앉아 있는 옥좌와 망토의 묘사가 그러합니다. 옥좌는 그 어떤 입체감이나 섬세함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치 두 천사를 깔고 앉아 있는 듯합니다. 망토의 옷 구김 또한 이전 시대 작품들보다 훨씬 거칠고 탁합니다. 미술사학자들은 이 시기 그림이 이렇게 후퇴한 이유를 ‘흑사병’에서 찾습니다. 흑사병이 그림을 어둡고 칙칙하며 단조롭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 코지모 로셀리,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요한 세례자’, 템페라, 1490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뉴욕, 미국.

예수님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모습으로 묘사

또 다른 작품을 보겠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으로 로마 시스티나 경당 ‘최후의 만찬’ 벽화 제작에도 참여한 코지모 로셀리(Cosimo di Lorenzo Filippi Rosselli, 1439~1507)가 1490년에 그린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요한 세례자’ 작품입니다. 일단 타데오의 그림보다 훨씬 밝습니다. 원근법을 이용해 입체감을 풍부히 살렸습니다. 성모님과 아기 예수, 요한 세례자의 머릿결과 성모님의 베일, 그리고 배경의 묘사가 아주 세밀합니다. 성모님의 인체 비율도 흠잡을 데 없고 젖무덤도 풍성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젖무덤을 크게 묘사한 것은 아기 예수에게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안전하게 보호하고 양육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그래서 암브로시오 성인의 말을 인용해 “그리스도를 키워낸 젖가슴”이라며 성모님께서 우리 구원의 전구자요 중재자이심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모님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합니다. 젖을 먹는 아기 예수를 바라보면서 앞으로 아들에게 닥칠 수난을 예감해 슬픔에 젖어 계십니다. 하지만 아기 예수는 두 손으로 성모의 가슴을 잡고 젖을 빨면서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중세 후반, 르네상스 초기 성미술은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시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 전구자이시며 중재자이신 성모님을 묘사하였습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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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1-09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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