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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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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 (8) 박득순의 노주교상

첫 한국인 주교의 근엄과 고뇌 묻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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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두산순교성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 있는 박득순의 ‘노대주교’. 성미술 전람회에 출품된 ‘노주교상’과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1965년이라는 제작연도와 서명이 추가됐다.


▲ 성미술 전람회에 출품된 박득순의 ‘노주교상’. 서울대미술관 제공




노기남 대주교 모델로 한 작품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인 1954년 성미술 전람회에는 성직자와 수도자를 모델로 한 초상화가 두 점 출품됐다. 박득순의 ‘노주교상’과 김흥수의 ‘수녀좌상’이 바로 그것이다. 그중 이번에 소개할 박득순(요셉, 1910~1990)의 ‘노주교상’은 전람회가 열릴 당시 서울대목구장이었던 노기남 주교를 모델로 해 작가 특유의 사실주의 화풍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현재 절두산순교성지 내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 소장된 ‘노대주교’와 동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현존하는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에 포함될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박득순은 1910년 함경남도 문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인 그는 서울 배재보통고등학교 재학시절 일본 동경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부임한 강필상(1903~?)에게 유화를 배웠다. 미술가의 꿈을 키우던 박득순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1934년 일본 동경의 다이헤이요 미술학교에 입학해 유화를 전공했다. 1938년 미술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고향에 머무르다가 이듬해 상경하여 경성부 도시계획과의 그림 담당으로 있으면서 당시 도시계획 대상지였던 영등포와 신촌, 돈암동 등지를 미래의 발전적 전망의 풍경화로 그리는 작업을 맡아 진행하기도 했다.
 

1940년 제20회 조선미술 전람회 서양화부에 처음 출품한 박득순은 유화 작품 ‘만도린과 소녀’로 입선했다. 이후에도 주로 인물화를 출품해 1944년까지 특선과 입선을 거듭하며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해방 후에는 서울 용산중학교 미술교사를 지냈고, 6ㆍ25 전쟁이 발발하자 종군화가로 전쟁기록화를 제작했다. 그는 1955~196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했고 이후 수도여자사범대학교, 영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며 작품 활동과 함께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가톨릭 미술에서도 꾸준히 활약한 그는 1998년 제3회 가톨릭 미술상 특별상을 받았다.
 

박득순은 인물화를 회화의 기본으로 삼았던 작가다. 그는 “인물화를 제대로 그릴 줄 알아야 풍경화, 정물화도 옳게 그릴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인체를 다각적으로 데생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1954년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 ‘노주교상’은 이와 같은 박득순의 회화에 대한 신념과 화풍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과 십자고상으로 신앙심 드러내
 

‘노주교상’은 1942년 한국인 최초로 주교품을 받은 노기남 대주교(1902~1984)를 모델로 한 초상화다. 화면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은 노 주교를 중심으로 한 서재의 풍경을 담고 있다. 작품의 구도에서 인물의 머리 위로 과감하게 지나가는 출입문의 직선이 인상적이다. 의자에 기댄 채 상체를 약간 젖혀 비스듬히 앉은 자세에서 약간의 권위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당당함이 묻어난다.
 

굳게 다문 입술과 초점이 뚜렷하지 않은 관조하는 듯한 시선 그리고 두툼한 책(제목은 쓰여 있지 않지만, 성경으로 추정된다)을 손에 쥔 모습에서 잠시 글 읽기를 멈추고 사색에 잠긴 인물의 내면을 마주하게 된다. 인물과 배경의 사실적인 묘사에 더해진 빛의 표현은 작품 속 인물의 영적인 측면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실내 풍경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노 주교의 어깨선과 나란히 놓인 책상 위의 십자고상이다. 왼손에 쥔 성경과 대각선 구도를 이룬다. 노 주교의 오른편과 왼편에서 각각 강조되어 표현되고 있는 성경과 십자고상은 그가 성직자로서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따르고자 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현재 절두산순교성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 구성과 표현이 동일한 ‘노대주교’가 소장돼 있다. 이를 통해 1954년에 출품됐던 작품의 색감과 세부 표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두 작품을 놓고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 꼼꼼하게 구석구석 뜯어보아도 다른 점을 찾기 어려워 동일 작품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절두산순교성지 소장 작품에는 원작에는 없는 서명이 있고 제작연도가 1965년으로 명기돼 있다. 따라서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제목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1954년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 제목은 ‘노주교상’인 반면, 노 주교가 대주교로 임명(1962년)된 이후인 1965년으로 서명된 절두산순교성지 소장 작품은 ‘노대주교’라고 돼 있다.
 

작품 제작연도만 고려한다면 같은 작품을 똑같이 두 번 그렸다는 뜻인데 어떤 연유에서 약 10여 년의 시차를 두고 ‘노주교상’과 ‘노대주교’를 그렸는지 명확한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그리고 1954년 출품작에는 서명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도 이 두 작품이 동일한 작품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가 돼주고 있다.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에는 작가의 서명이 들어간 경우도 있지만, 서명이 생략된 작품들도 여럿 있었다. 남용우의 ‘성모칠고’와 권영우의 ‘성모자’, 김흥수의 ‘수녀좌상’과 ‘간구’, 김정환의 ‘성모영보’와 ‘삼왕’ 등 여러 작품에 서명이 생략돼 있다. 각각의 작품과 작가를 맞춰볼 수 있는 것은 작품 캡션까지 함께 찍힌 성낙인의 기록 사진과 경향잡지에 실린 작품 목록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박득순의 ‘노주교상’과 ‘노대주교’는 서명이 생략되어 있던 기존 작품에 서명이 덧붙여지면서 만들어진 이명동작(異名同作)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리고 작품제작 연도로 기재된 1965년은 서명을 추가했던 연도일지도 모른다. 작품제목 역시 서명이 이루어진 1965년 상황에 맞춰 ‘노대주교’로 정정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1954년 출품작 ‘노주교상’과 절두산순교성지 소장 ‘노대주교’는 똑같이 닮아 있다.


▲ 정수경 가타리나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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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1-3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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