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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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르포] 삶의 터전 불타버린 지 한 달…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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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 오후 11시경, 상점이 모두 문을 닫고 인적이 끊긴 시장 상가 안에 작은 불꽃이 튀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불씨는 손쓸 새도 없이 덩치가 커졌고 건물 전체를 삼켰다.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에서 가장 큰 시장인 서천특화시장은 20여 분 만에 사라져 버렸다.

매일 아침이면 새로 들어오는 수산물과 이를 찾는 손님들로 활기를 띄었던 시장. 누군가에게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이어 성실히 장사하며 자식을 키워낸 삶의 터전이었고, 이웃과 소통하며 정을 나누는 안식처였던 시장이 잿더미가 됐다. 한순간에 사라진 삶의 터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앗아갔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것 같은 순간, 그들을 돕고자 모인 이들은 부활로 향하는 작은 불씨를 건넸다. 모든 것을 사라지게 했던 불씨는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더해져 모든 것을 희망할 수 있는 불씨로 다시 피어났다.


삶의 터전, 십자가가 되다

서천특화시장에서 이불과 한복을 파는 ‘광명상회’는 일반동의 마스코트와 같았다. 가게 이름처럼 늘 밝게 웃으며 손님을 맞는 주인 김자숙(미카엘라)씨 덕분이다. 첫 아이가 100일이 되자마자 등에 업고 나선 장사. 40년 전, 시장 건물이 세워지기 전부터 시골장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이불을 팔았던 김씨에게 광명상회는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이었다.

문 없이 오픈된 일반동에서 늘 가게 앞에 한 발짝 나와 있던 김씨는 본인 가게에 오는 손님이 아니라도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곤 했다. “저 천주교 신자예요”라고 자랑하고 다닌 덕분에 “천주교 신자라 양심적으로 성실하게 장사를 잘한다”고 시장에서 소문이 나기도 했던 김씨. 40년 쉬지 않고 해온 일이 힘들 법하지만 성실하게 일한 만큼 알아주는 손님들 덕분에 “이제야 장사할 맛이 난다”던 그는 이번 화재로 하룻밤 사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자고 있는데 전화벨이 계속 울려 전화를 받으니, 단골손님이 ‘시장에 불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시장으로 뛰쳐나가니 이미 건물 전체에 불이 번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눈물도 나지 않고 불타고 있는 가게를 한동안 멍하게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이날 화재로 소실된 점포만 227곳. 조립식 패널로 지어졌던 건물은 강한 바람을 타고 확산된 불길에 속수무책으로 타들어 갔다. 설을 앞두고 성수품을 많이 준비해 놓았던 김씨도 1억 원가량의 피해를 입었다. 눈 앞에서 타들어 가는 가게를 보며 누군가는 땅에 주저앉아 통곡했고, 누군가는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 없어 망연자실했다. 서천읍 역사와 함께해온 서천특화시장은 지역주민의 삶과 추억이 깃든 소중한 장소였기에 이날의 화재는 지역 전체의 아픔으로 남았다.

화재가 일어난 지 한 달여, 잿더미 속에서 뼈대만 남은 시장의 모습은 상인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마음이 밀려왔다”는 김씨는 “한창 일할 맛이 나던 지금, 이런 일을 제게 주신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함께 부활을 만드는 사람들

“밥도 국도 많이 드세요. 뭐 더 드릴까요?”
2월 15일 정오. 서천특화시장 건너편 먹거리동 2층에서는 상인들의 점심 식사가 한창이었다. 화재 피해 지원을 위해 먹거리동에 임시로 마련한 통합지원센터에 모인 200여 명의 상인들. 매일 정신없이 지내며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서천본당(주임 박성준 요한 세례자 신부)이 상인들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하고자 밥차를 마련한 것이다. 불고기에 육개장, 푸짐해 보이는 모양새에 정성을 가득 담았음이 한눈에 보인다. ‘서천성당’이 적힌 조끼를 입은 신자들은 식판 가득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상인 박정순씨는 “집에 있으면 우울하고 마음이 안 좋아서 여기에 나와 다른 상인들과 이야기도 하고 정보도 얻으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며 “경황이 없어 차가운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지냈는데 성당에서 따뜻한 밥을 해주셔서 오늘은 몸도 마음도 든든하게 챙길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배식하는 신자들 사이로 가장 열심히 음식을 담아주는 유은숙(데레사)씨는 화재로 피해를 입은 수산동 상인이다. 딸 이름을 딴 ‘애경이네’에서 30년간 수산물을 팔아온 그도 이번 화재로 자식과 같은 가게를 잃었다. 그가 힘든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던 계기는 신앙이었다.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성실히 살았던 제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주임 신부님께서 매주 미사 때마다 “서천시장 상인들을 위해 미사드린다”면서 저희와 함께해 주시려는 마음이 큰 위로가 됐습니다. 그 마음 덕분에 고난을 버텨낼 힘을 얻었습니다.”

지난 2월 6일에는 대전교구와 서천본당이 함께 신자 상인 20가구를 초청해 위로금을 전달했다. 고통을 나누고자 손을 내민 이들의 따뜻한 마음은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부활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김자숙씨는 “장사하느라 딸 집에도 못 갈 만큼 바쁘게 살았는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 내 몸도 챙기고 주변도 돌아보면서 조금 쉬어가라는 하느님의 뜻이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은숙씨도 “예전에는 몰랐는데 주변에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시는 분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감사한 시간이기도 했다”며 “내가 도움을 받은 만큼 앞으로는 베풀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후원 계좌: 농협 351-0615-2674-93(예금주 (재)대전교구천주교유지재단)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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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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