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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속 세계공의회 2부] 3. 교황 바오로 6세와 공의회 속개

전례, 교회헌장, 일치교령 등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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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바오로 6세가 1963년 9월 29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2회기를 개회하고 있다. 【CNS】
 

▨바오로 6세 교황 선출과 제2회기
 1963년 6월 19일 요한 23세 후임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렸습니다. 이틀 후 다섯 번째 투표에서 새 교황이 탄생했습니다. 밀라노 대교구장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 추기경이었습니다. 밀라노 대교구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을 받는 교구였습니다. 몬티니 추기경은 사회 사도직을 중시한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또 교황청 외교관학교 출신으로 국무원 차장을 지내 교황청 사정에도 밝았습니다. 새 교황은 이름을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로 지었습니다.
 공의회가 흐지부지될지 모른다는 일부 우려를 불식하고 바오로 6세는 전임 교황의 뜻을 이어 공의회를 속개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몇 가지 새로운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중 평신도가 전체회의(총회)에 방청할 수 있도록 한 것과 전체회의에서 안건 거부나 연기에 필요한 의결 정족수를 3분의 2에서 과반수로 줄인 것 등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9월 29일 공의회 제2회기가 열렸고, 교황은 개회 연설에서 4가지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교회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 이해, 교회 쇄신, 그리스도교 일치의 촉진, 현대 세계와의 대화였습니다.
 제2회기에서 가장 시간을 끈 것은 교회에 관한 의안이었습니다. 제1회기 때 전체회의에서 거부돼 재작성된 수정 초안이 의안으로 정식 채택됐습니다. 주교단 단체성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주교단 단체성이란 쉽게 말해서 12사도가 베드로를 으뜸으로 해서 하나의 사도단을 이루는 것처럼, 주교들도 단장인 교황을 머리로 해서 하나의 주교단을 이뤄 보편 교회에 대한 권한을 행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교단 단체성이 부각되면서 이것이 교황 수위권을 약화시킬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논쟁이 격화됐고 해결책이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든 신자가 거룩하게 되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는 성화 성소의 보편성 문제, 종신 부제 제도 도입 문제, 마리아에 관한 부분을 교회 의안에 포함시킬 것인지 별도로 다룰 것인지도 쟁점이 됐습니다.
 교회 일치 의안도 상정됐습니다. 교회 일치를 위한 가톨릭의 원칙, 이 원칙 이행에 필요한 기준, 동방 교회와 관계, 개신교회들과 관계 등이 주요 논의 대상이었습니다. 종교 자유에 관한 부분과 유다인에 대한 문제도 들어 있었습니다. 논란이 계속되면서 쉽사리 결론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교회에 관한 안건을 논의하던 10월 중순에 전례에 관한 안건이 상정됐고 일부에 대한 수정 요청이 제기됐습니다. 11월 22일 수정된 안건이 전체회의에 회부됐고 별도 토론 없이 표결에 붙인 결과 압도적 지지(찬성 2158, 반대 19)로 통과했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이하, 전례헌장)입니다.
 장황하고 핵심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 제1회기 때 거부돼 재작성한 매스컴에 관한 수정안도 11월 25일 전체회의에서 통과했습니다(찬성 1508, 반대 503). `사회 매체에 관한 교령` 「놀라운 기술」(이하, 사회매체교령)입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2월 4일 장엄 공개회의에서 `전례헌장`과 `사회매체교령` 두 문헌을 반포하고 제2회기를 폐회합니다. 교황은 폐회 연설에서 회기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이 남아 있다고 밝혔습니다.
 교황은 한 달 후인 1964년 1월 4~6일 예루살렘 성지를 방문해 5일에는 그리스 정교회 수석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 1세와 역사적 만남을 가졌습니다. 1054년 쌍방이 서로 단죄한 후 910년 만에 화해 악수를 나눈 것입니다. 공의회의 주요 목표인 교회 일치 촉진을 몸소 실천에 옮긴 셈입니다.
 
 ▨제3회기
 제3회기는 1964년 9월 14일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개회 미사로 시작했습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전 세계 5대 대륙을 대표하는 주교 24명과 함께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전례 공동집전을 중요시한 전례헌장 정신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많은 의안들이 상정됐습니다. 교회, 주교직, 사제 생활, 평신도사도직, 동방가톨릭교회, 현대 사회에서의 교회, 선교, 교회 일치, 사제 양성, 수도생활, 그리스도교 교육 등에 관한 수정안 또는 초안들이었습니다. 교회 일치에 관한 초안에 들어 있던 종교자유, 유다인 문제 등은 별도 안으로 작성돼 다시 올라왔습니다.
 초안으로 올라온 의안들은 대부분 수정 또는 재작성이 요구됐습니다. 평신도사도직 의안은 평신도의 고유한 권리와 책임, 영성 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유다인에 관한 의안은 유다인들에 관한 우호적 표현에 보수적 우파들이 반발했습니다. 현대사회에서의 교회에 관한 안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초안과 초안 작성자들이 `비둘기처럼 양순하지만 뱀처럼 지혜롭지는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분야의 초안들도 심의 과정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회기 내 통과가 어려워 보였습니다. 당초 제3회기로 끝내려고 했던 공의회는 한 회기를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수정안 가운데 동방가톨릭교회에 관한 안은 거의 논란 없이 통과했습니다. 이것이 동방가톨릭교회에 관한 교령 「동방교회들」(이하 동방교회교령)로, 동방교회의 고유한 전례와 전통을 명시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이 특징이었습니다.
 교회에 관한 수정안은 논란을 거듭한 끝에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주교단은 전 교회에 대해 책임과 권한을 지니지만 이는 주교단의 일원이자 단장인 교황과 함께할 때만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개선하는 교회가 아니라 순례하는 교회라는 부분이 강조됐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거룩하게 되라는 소명을 받고 있지만 그 방식은 평신도와 수도자가 다르다는 점이 부각됐습니다.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이하, 교회헌장)이 마련된 것입니다.
 교회 일치에 관한 안도 우여곡절 끝에 통과했습니다. 전체회의 표결을 앞두고 교부들 의사와 상관없이 윗선 지시에 따라 19곳이 수정돼 교부들이 크게 반발한 것입니다. 이것이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이하, 일치교령)입니다.
 제3회기 폐회일인 1964년 11월 21일 전체회의에서 교회헌장(찬성 2151, 반대 5), 일치교령(찬성 2137, 반대 11), 동방교회교령(찬성 2110, 반대 39) 세 문헌이 전체회의에서 통과했고, 교황 바오로 6세는 세 문헌을 공식 반포한 후 폐회했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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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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