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2부] 5. 공의회 이후 변화

모국어로 미사 참례, 성경에 관심 증폭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미사 모습.
영성체 할 때는 제단과 신자석을 분리시키는 난간 앞에 무릎을 꿇고 입으로 성체를 모셨다.
 
 
   오늘의 가톨릭신자들은 50년 전 개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와 신자들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2010년 말 현재 한국 천주교회 신자 수는 520만5589명,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세대라고 할 수 있는 1965년 말 신자 수는 53만 217명이었습니다. 당시 신자가 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살아서 신앙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그 비율은 전체 신자의 10에 불과합니다. 이미 선종하신 분들을 고려한다면 그 비율은 훨씬 더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공의회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다 준 변화는 실로 엄청났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공의회 이후 변화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니다.
 
 ▨전례 쇄신과 하느님 말씀에 대한 강조

 가장 먼저 이뤄진 그리고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전례 분야였습니다. 공의회의 첫 결실인 전례헌장이 반포되고(1963년 12월 4일) 난 직후 1964년 4월 한국 주교회의는 전례 쇄신과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 촉진이라는 전례헌장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산하에 전례위원회를 설치합니다.

 전례위원회의 첫 결실은 한국어 미사였습니다. 당시까지 미사 전례는 라틴어로 거행했습니다. 신자들은 뜻도 잘 모르는 라틴어를 귀동냥으로 따라 했습니다. 알 수 없는 라틴어를 따라 하기 힘든 신자들은 미사와 상관 없이 묵주기도를 바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말로 미사를 드린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 변화였습니다. 주교회의는 공의회 기간인 1964년 10월 로마에서 회의를 열어 1965년 1월 1일부터 자비송, 대영광송, 독서, 복음, 신경, 거룩하시다 등 신자들이 함께 하는 부분은 한국어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변화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제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교회의는 우리말 미사 취지가 신자들의 능동적 전례 참여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사제들에게 제대로 시행할 것을 당부하는 서한을 발표했습니다. `미사통상문`으로 지칭되는 우리말 미사는 이후 로마(교황청)의 미사경본 개정 작업에 따른 우리말 번역 작업과 수정을 거쳐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미사 전례에서 바뀐 것은 모국어 사용만이 아니었습니다. 공의회 이전에는 제대가 벽에 붙어 있었고 사제는 성찬 전례 때 신자들을 등지고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신자들은 사제 등을 바라보며 미사 전례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공의회 이후 사제는 지금처럼 제대를 중심에 두고 신자들을 바라보며 미사를 거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대가 사제와 신자들 사이에 있다는 것은 제대가 상징하는 그리스도를 공동체의 중심에 모신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공의회 이전에는 신자석과 제단 사이에는 분리 난간이 설치돼 있었고 신자들은 난간에 무릎을 꿇고 성체를 입으로 받아 모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난간은 모두 치워졌고, 신자들은 서서 손으로 성체를 모십니다. 성당에서 하는 동작들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성당에 들어가거나 성당에서 제대를 가로지를 때 지금은 모두 큰 절로 제대를 향해 예를 표시합니다만, 공의회 이전에는 마치 중세 기사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표시했습니다. 이 밖에 여성이 미사 복사를 서거나 평신도에게 예외적으로 성체 분배권을 수여하는 것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쇄신에 따른 변화들입니다.

 전례력 개혁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쇄신에 따라 이뤄진 변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회가 예수 성탄과 예수 부활을 두 축으로 해서 대림시기를 시작으로 성탄시기-연중시기-사순시기-부활시기-연중시기로 1년을 전례주년으로 지낸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입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성인들의 축일이 중심이었습니다. 공의회는 전례 쇄신을 통해 전례주년의 중심은 주님이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경축하는 데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에 따라 1969년 지금과 같은 전례력이 마련돼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례 쇄신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느님 말씀 곧 성경에 관한 강조입니다. 공의회 이전에는 미사에서 성찬 전례가 강조됐고 말씀 전례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졌습니다. 이는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들이 "오직 성경만으로!"를 주장한 데 맞서 가톨릭교회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성전(聖傳)과 함께 성사(聖事)를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성경을 소홀히 한 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헌장을 통해 하느님 말씀인 성경이 미사 전례에서 더욱 다양하고 풍요롭게 활용될 것을 강조했고, 이에 따라 미사에서 말씀 전례도 성찬 전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이 부각됐습니다. 특히 공의회는 계시헌장을 통해 하느님 말씀에 맛들일 것을 강조하면서 성경 번역은 물론 성경 읽기와 성경 보급, 성경 연구 사도직 활성화 등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 교회에서도 성경에 대한 관심이 일고 성경 공부에 집중하는 사도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주교회의 산하에 성서위원회가 설립된 것도 공의회가 끝난 후인 1965년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천주교회에는 제대로 다 번역된 신구약 성경이 없었고, 새로운 성경 번역을 추진하던 성서위원회는 1968년 개신교와 함께 공동번역위원회를 구성, 성경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1971년에는 공동번역 신약성경이 1977년에는 공동번역 구약성경이 출간되면서 합본으로 발간됐습니다. 이는 성경에 대한 관심과 함께 교회 일치 촉진이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이 함께 작용한 결실이었습니다. 개신교 측에서 공동번역 성경을 사용하지 않아 취지가 무색해지면서 1980년대에 분도출판사가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를 펴냈고, 2005년에는 가톨릭교회의 독자적인 새 번역 성경이 출간됐습니다.

 하느님 말씀에 맛들일 것을 강조한 공의회 가르침은 일반 신자들을 위한 성경 공부 모임으로 이어졌습니다. 1972년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에서 대학생들을 위한 성서모임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다양한 성경공부 모임들이 생겨났습니다. 최근에는 성경 공부뿐 아니라 성경 필사를 통해서 하느님 말씀에 더욱 맛들이려는 노력들이 계속 확산되고 있습니다.

 물론 전례 쇄신 운동과 성경 연구 및 보급 운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전부터 특히 유럽 교회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운동들이 운동으로 머무르지 않고 실제적인 변화와 쇄신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2-01-15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2

1테살 5장 18절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