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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56) 길에 대한 명상 (2)

길에서 만난 모든 것 그대로 바라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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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란 어떤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이며, 서로 다른 장소를 연결해주는 통로입니다. 길이 진정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위한 여정이라면 그 길 위에는 분명한 예의가 있습니다. 그 예의란 어떤 길을 처음 걸을 때는 자신의 이기심, 소유욕, 호기심 등을 잘 누르고,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만 보는 것입니다.

소중한 길일수록 원래 그 길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는 이들에 대한 존중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의 표현으로 그 길 위에 있는 풀 한 포기, 나뭇가지 등 어느 것 하나, 무심히 꺾거나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길섶에 사는 이들에게는 그 모든 하나하나가 의미 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그것들이 그들 가족의 이야기가 묻어 있고, 삶의 역사가 서려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과장된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올레꾼들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어느 것 하나 남아 있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자생난, 돌, 고사리, 약초뿐 아니라 일반 집 담 밖으로 나온 귤 등을 너무나도 쉽게 해치기에 생겨난 말인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올레길이라고 불리는 곳 주변에 ‘절대 손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붙은 걸 보면서 ‘오죽하면 저러랴’ 싶었습니다.

꼬불꼬불 돌담길의 제주도는 참 아름답습니다. 직선이 아닌 굽은 제주도 길에는 그 자체로 이유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길을 걷다가 남의 집 얕은 담을 지날 때 가벼운 헛기침을 하며 자신이 지금 길을 지나간다고 인기척을 했답니다. 그러면 집 안에서 웃통을 벗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주섬주섬 간단히 옷을 걸쳤답니다. 지나가는 사람도, 집 안에 있는 사람도 서로에게 무안함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의 표현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도 길에 대한 배려, 소통, 예의가 배어있음을 알게 됩니다.

신문에서 ‘올레 1길’을 잠정폐쇄한다, 올레길 방범을 강화한다 등의 기사들을 읽었습니다. 이제 올레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닐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배려와 소통과 예의가 담긴 길의 본질은 퇴색되고, 불안과 한계, 부자연스러움과 인위적인 어떤 ‘지대 혹은 지역’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고를 대비해 치안이 강화되는 길은 더 이상 사색의 올레길이 아닐 것입니다.

올레길이 좋아 오늘도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올레길을 새로 더 만들기보다 길을 걷는 이들이 자기 내면을 좀 더 헤아리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그래서 길에서 만나는 이들의 삶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일상을 존중하고, 애환을 느끼며, 만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와 함께 그들 각자는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삶의 길 모두가 그 자체로 소중한 길임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길을 걸은 이들이 좀 더 겸손하고, 작고 소중한 것들을 아끼며, 궁극적으로 자신을 좀 더 친절하게 만났으면 합니다. 그럴 때, 길은 길 자체가 주는 품격과 가치 때문에 서로배려하고, 돌보고, 지켜줄 것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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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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