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74) 다시 일어나는 법도 가르쳐 주세요

“교회가 인간적인 생각이나 약점으로 걸려 넘어져. 신앙 떠난 이들 다시 일어나게 하는 방법 고민해야”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한국교회 순교 사적지를 며칠 동안 순례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느 본당이 운영하는 저렴하면서 깨끗한 숙소가 있어 그곳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다음날 숙소 식당에서 예약해 둔 아침 식사를 하려는데, 그곳 본당 주임신부님도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시려고 나오셨습니다.

그 신부님을 보는 순간 ‘앗’하고 놀랐는데, 예전 신학교를 1년 정도 같이 다녔던 신부님이었습니다. 거의 20년이 다 됐을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는데도 희미하게나마 서로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본당 신부님이라고 특별할 것 없는, 우리와 똑같은 아침 식사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면서 그 신부님은 순례 중인 제게 좋은 묵상거리를 주었습니다.

“신부님, 저는 교회사 관련 전문가도 아니고 단지 주변에 본당 관할 성지가 많고, 이곳 본당도 교구 안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기에, 나름 순교자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존창’에 대해 묵상을 자주 하게 돼요. 알다시피, 내포 지방에 최초로 천주교를 전파했고 당시 한국 내 어느 지역보다 천주교가 번성하도록 이끈 ‘이존창’은 그 누구보다 성직자 영입운동에도 적극적이었잖아요. 그런데, 1791년 신해박해 때 체포돼 배교를 하고, 홍산으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이 사실은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이었고, 이에 대해 조선 교구장인 다블뤼 주교님도 ‘내포 천주교회 신자들이 가장 슬퍼하고 창피스러워했던 배교는 그들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의 배교였다’라고 쓰셨잖아요.

그런데 ‘이존창’은 내포 지방에 천주교가 급속하게 전파되는 것을 보고, 어쩌면 순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결실로 생각했을 거예요. 그랬기에 지금 자신이 죽는다면 저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어떻게 될지 몰라 지금 죽기보다 우선 목숨을 건진 다음, 공동체를 더욱 활성화 시키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것 역시 인간적인 생각이지만!

그런데 결국 이존창은 배교 후에 다시 뉘우쳐 천주교 신앙을 고백하다가 신유박해 때 순교를 하잖아요. 배교를 넘어 다시 일어나 순교의 길을 가던 이존창의 모습.

우리 교회도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을 천주교 신자로 만들까’만 연구할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생각 때문에 걸려 넘어지고 냉담하거나 신앙을 저버린 이들이 어떻게 하면 다시 일어나 교회로 돌아올 수 있을지, 그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부님의 생각은 무척 진지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많은 것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배교를 넘어 다시금 순교의 길을 걸었던 우리 순교자들의 모습. 복음화를 위해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숫자를 늘리는 것도 중요할 수 있지만, 인간적인 생각이나 약점으로 인해 걸려 넘어져 신앙에서 멀어지거나 떠난 이들을 다시 일어나게 하는 방법들에 대해 교회가 좀 더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합니다.

보다 적극적인 실천 방안을 갖고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교회가 보여주는 신앙의 진지함은 그들이 잘 일어설 수 있는 좋은 표양이 될 것입니다. 다만, 가시적이면서 빨리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재촉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01-1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3

민수 6장 25절
주님께서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