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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76) 바가지 긁기와 거품 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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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몇몇 신부님들과 식사를 하면서 올 한 해 이렇게 살겠다, 본당을 이렇게 운영해 나가야겠다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어느 신부님이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올해 나에게 바가지 긁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러자 다른 신부님이 웃으며 “바가지, 그거 얼마나 짜증 나고 귀찮은데! 부부 사이에서 바가지 긁는 아내에게 질겁하는 남편들의 하소연 안 들어 봤어? 그럴 때는 혼자 독신으로 사는 우리 삶이 편한 거야. 하기야 너는 바가지를 안 긁혀 봐서 전혀 모르니,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거겠지.”

이 말을 들은 그 신부님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습니다.

“바가지 긁기가 사실은 얼마나 영성적인지 몰라서 그래. 바가지 긁는 아내의 잔소리를 가만히 잘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남편의 허세를 차단해 주고, 허풍스런 생각의 거품을 빼주면서 다시금 현실감 있게 남편이 스스로 돌아보게 해주는 그런 기능이 있어.

매일 살림을 하는 아내는 지금 우리 가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당장 무엇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 경제적 여건은 어떻게 만들고, 아이들 교육은 어떠해야 하며, 노후를 위해서나 학자금 마련을 위해 늘 고민하고 생각하지.

하지만 남편들은 돈을 벌어다 준다고 하면서, 그 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 현실감이 없다 보니, 자신이 돈을 아주 많이 벌어주는 존재라고만 생각해. 그러다 보니 때로는 자기 존재감도 드러내고 싶고, 어디 가면 폼 나게 기분 내고 싶어 하지.

그런데 그런 마음을 아내들이 모르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에 자기 남편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기 죽이기 위해 악랄하게 행동하는 아내는 없어. 여러 사람 앞에서 기분 내고, 잦은 술자리에 물질적 소비와 육체적 건강을 해치고, 휴일이나 주말에는 그저 잠만 자고, 집에서 정말 간혹 보는 자녀들에게 괜히 ‘이래라저래라’ 야단치고. 이런 모습에서 가장 마음이 아픈 사람은 아내란 말이야. 그래서 ‘바가지 긁기’를 통해 더 좋은 남편, 좀 더 좋은 아빠가 되기를 바라지.

그런데 신부인 우리들을 보라고. 신자들 앞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허풍치고 허세 부리잖아. 그게 다 바가지를 안 긁혀봐서 그런 거야. 바가지 긁기에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매력이 있어. 사람이면 누구나 이런 것을 해 보고 싶고, 저런 일을 추진해 보고 싶기도 하면서, 목표를 세우면서 자기 존재감을 자기 능력으로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잖아. 그런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다’ 말하고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고 솔직히 말해 주는, 한 마디로 바가지를 긁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거지.

우리에게 현실을 올바로 직시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우리들의 허풍과 허세에 바가지 긁어줄 사람을 만나는 것, 좀 아프지만 그거 우리 삶에 좋은 일이라 생각해.”

‘바가지 긁기’라! 감정을 해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진정 사랑이 담긴 잔소리, 성장을 바라는 잔소리, 진심이 담긴 잔소리를 해주는 바로 그 누군가를 만나는 것,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는 우리 삶의 중심을 잘 잡아 주는 하느님의 선물인 듯합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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