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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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나] 354. 자살을 어떻게 봐야 하나요?

홍성남 신부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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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문: 저는 세례를 준비 중인 예비신자입니다. 지금 교리반을 다니는데 교리 봉사자에게 자살에 대해 질문했더니 자살은 아주 큰 죄라서 성당에서 장례 미사도 해주지 않는다, 자살자는 구원도 받지 못한다는 대답을 듣고 망연자실합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자살한 분이 계셔서 기도해 주고 싶었는데 마음이 답답합니다. 다른 종교를 가야 하나 하는 갈등까지 생기고요.



답: 형제님의 마음이 답답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자살에 대하여 그 봉사자분이 너무 단순하게 설명을 한 듯합니다. 교회에서 자살을 큰 죄로 보는 것은 자살이 그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신 하느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족 중에서 자살자가 나오면 가족 친구들 모두 심리적으로 심한 외상을 입습니다. 자기 한 사람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 자살자와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죄책감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만 생각나고 심지어는 자기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공동체를 무너지게 하는 자살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목 현장에서는 자살자에 대해 배려를 해드립니다. 그 이유는 우선 자살자의 심리적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대개 자살하는 사람들은 심한 우울증이나 불안증 등 신경증적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합니다. 심리적으로 안정적이고 건강할 때 선택한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또 사람은 죽음을 맞으려 할 때에 자신의 일생 전체를 관조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고 회개하는 태도를 갖습니다. 하느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는 회심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심리적 상태를 고려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 이유는 유족들을 고려해서입니다. 유족들은 가족을 잃은 상실감과 죄책감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상태입니다. 이런 유족들에게 교회가 차가운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들에게 또 한 번의 깊은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자칫 그들이 교회와 하느님께 등을 돌리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에 사목적 배려를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이런 경우, 냉정하게 대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 것인가? 가장 큰 문제는 공동체 의식의 결여입니다. 한 공동체 안에서 사람이 목숨을 끊는 것에 대해 공동체원들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대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본당 사목자들은 더욱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권력자들이 사죄하고 책임감을 통감하듯이 사목자 역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데 자살을 마치 개인의 잘못으로 여기고 교회의 가르침에 역행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공동체원으로서의 책임감 결여로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사람 마음에 대한 무지함의 소치 때문입니다. 사람의 심리 상태는 아주 민감하고 복잡합니다. 어떤 선택을 할 때 마음 안에서는 복잡한 감정들이 일어나고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합니다. 그런 중에 선택하는 것인데 이런 심리 상태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뿐만 아니라 심리적 질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끝내려고 할 때 단순하게 선택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사람의 생존 욕구는 아주 강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 하는 이들도 생존 욕구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니 오히려 더 강하다고 합니다. 살고 싶은데 죽어야 하는 이의 마음에 대한 깊은 공감이 없이 교리적 관점에서만 판단하는 것은 또 다른 자살자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자세입니다. 이런 방관자적 태도야말로 주님께 질책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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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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