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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나?] (89) 아량을 넓히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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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량을 넓히려면

   새내기 직장인입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고요. 저는 직장에서 통큰 남자로 통합니다. 웬만한 일에는 절대로 화를 내지 않고 호인처럼 웃어 넘기니까 주위 사람들은 아량이 넓은 남자로 알고 저와 결혼한 여자는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저를 보고 새가슴이라느니 잘 삐친다느니 하면서 놀려댑니다. 사실 저는 밖에서는 호인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작은 일에 잘 삐치는 성격이라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더 힘든 것은 제 잘못에 대해 용서하지 못하고 밤새 고민할 때가 많아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량이 넓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형제님은 베드로 성인에 대해 묵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인간적인 면에서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던 분입니다. 주님을 배반한 것도 그렇고, 바오로 사도에게 힐난을 당한 것도 그렇고, 주님 뜻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야단을 맞은 것도 그렇고 말 그대로 흠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신흥종교에 지나지 않았던 그리스도교가 세계적 종교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아량이 넓은 분이셨습니다.

 비단 베드로 사도뿐 아니라 대제국을 이룬 역사 속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아량이 넓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이민족의 왕임에도 하느님이 보낸 사람으로 칭송받는 페르시아 왕은 자신이 점령한 나라의 백성을 존중하는 큰 아량을 보인 사람으로서 페르시아 대제국을 이룬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량이 좁은 지도자들, 내 편 네 편 이분법적으로 나눠 생각하고 늘 적대감을 가지고 살았던 지도자들은 악명을 떨치거나 단명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만약 베드로 사도가 아량이 넓지 않은 분이셨다면 초기 가톨릭교회는 작은 종교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 사도는 어떻게 아량이 넓은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시쳇말로 `용서의 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다른 사람들을 잘 용서해줬을 뿐만 아니라 자기용서를 잘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 스스럼없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글을 올리실 수 있었습니다.

 자기용서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는 용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인데, 이 중에서 자기용서는 생소하지만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개념입니다.

 심리학자 베브스몰우드는 자기용서가 정신건강에 아주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즉 자기용서를 잘하는 사람은 아량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큰 용서를 받았을 때 관대한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용서를 받고나면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고,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에 잘못한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고 격려해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잘못에 대해 율법적으로 삭막하게 단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 자신도 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을 인정하기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기용서를 잘하는 사람들은 아량이 넓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반면 자신의 인생에는 하자가 전혀 없어 용서받을 일이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까칠한 성격을 갖게 돼 아량이 좁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잘못한 것에 대해 아주 심하게 몰아붙이고, 편을 갈라 생각하는 옹졸함을 보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많다"고 하신 것은 바로 자기용서의 영성적 의미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형제님이 아량을 키우시려면 우선 자신의 잘못을 심하게 따지지 말고 자기용서를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자기용서에 대해 부연하자면, 고해성사를 보고 난 후에도 마음이 불편한 분들 역시 자기용서가 안 되는 분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용서를 해주셨다고 해도, 고해신부가 사죄경을 해줬다고 해도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자신을 몰아붙이고 단죄를 합니다. 이 때문에 고해를 하고 난 후에도 마음이 편치 않고, 보속이 너무 작다고 자학적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런 분들은 기도는 많이 하는데 마음은 늘 불안과 우울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심리적 연옥`에서 산다고도 하는데, 하느님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자기용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잘못한 이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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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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