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이스라엘 이야기] 카파르나움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관리하는 카파르나움 유적지에는 Town of Jesus라 적힌 안내판이 붙어 있다. 1905년 전에는 카파르나움이 흙더미에 묻혀 있었으나 1985년까지 이어진 프란치스칸들의 발굴 작업으로 그 역사적인 현장이 드러나게 되었다. 예수님의 유년기 고향은 나자렛이지만 공생활을 시작하신 후에는 카파르나움이 주요 거점이었다. 그래서 카파르나움은 성경에 ‘예수님의 고을’로 소개된다(마태 4 13 9 1). 다만 새들과 여우는 보금자리가 있으나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둘 곳이 없다 하신 것으로 보아(마태 8 20) 따로 정해진 거처는 없었고 베드로와 함께 지내신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은 초기 신자들이 베드로의 집을 순례하고 그곳에 자기 이름을 새겨놓은 데서도 추정할 수 있다.

카파르나움은 히브리어로 ‘크파르 나훔’이며 ‘나훔의 동네’로 해석된다. 그러나 열두 소예언자 가운데 하나인 나훔과는 관련이 없다. 나훔은 그 어근 안에 위로 위안이라는 뜻을 포함하므로 예수님의 고장답게 카파르나움은 ‘위안을 주는 동네’로도 그 뜻을 풀이할 수 있다. 인구는 천명에서 천오백 정도로 추정되며 헤로데 안티파스가 다스린 국경 도시였다. 성경에 헤로데가 여럿 나오므로 헷갈릴 수 있으나 헤로데 안티파스는 헤로디아 사건으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친 영주다(마태 14 3-12). 욕심 많은 안티파스는 갈릴래아 호수를 자기 소유라 생각하여 어부들에게서도 물고기 세를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카파르나움에는 ‘해변길’이라 불리는 고대 도로가 지나갔다. ▲ 카파르나움 마을의 흔적(앞)과 베드로 집터 성당(뒤).

해변길은 이집트와 시리아를 잇는 국제 도로였으며 구약에는 ‘바다로 가는 길’로 나온다(이사 8 23). 그래서 카파르나움에는 이래저래 세금 거두는 세리들이 많았던 듯하고 그들 가운데 마태오가 예수님의 제자로 불림을 받았다(마태 9 9). 곧 ‘바다로 가는 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던 백성들이 카파르나움을 통해 ‘큰 빛’을 보게 되었다(이사 8 23 마태 4 13-17). 그리고 이 해변길 덕분에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말씀이 다른 지방으로도 퍼져나갔을 듯하다.

카파르나움은 코라진 벳사이다와 함께 주님께서 당신의 권능을 가장 많이 보이신 고장이었다(마태 11 20-24). 이곳에서 예수님은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낫게 하셨고(마태 8 14-15) 중풍병자를 치유하셨다(마르 2 1-12). 또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탈리타 쿠미’ 곧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말씀으로 살려내셨다(마르 5 21-43). 백인 대장의 노예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도 예수님이 고치셨는데 당시 백인 대장이 표출한 신앙이 눈에 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 8 5-13). 이 백인 대장은 카파르나움 회당을 짓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루카 7 5).

카파르나움 유적지에서 발굴된 베드로의 집은 최초의 ‘가정 성당’(domus ecclesia)이었으므로 유다·그리스도교적 상징들이 많이 새겨져 있었다. 로마 시대에 탄압받던 신자들이 이곳에 모여 비밀리에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베드로의 집 자체는 그리스·헬라 시대에 지어진 것이었기에 베드로가 카파르나움에 정착하면서 인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비잔틴 로마 시대에는 예수님이 거처하신 방을 중심으로 팔각형의 성당을 지었고 현재는 그 위에 배 모양의 베드로 기념 성당을 새로 봉헌했다. 카파르나움 중심부에는 회당이 있는데 예수님이 설교하신 회당 바로 위쪽으로 서기 4~5세기의 회당이 다시 지어졌다. 여염 사람들이 거주한 검고 좁은 집들에 비해 하얀 돌로 웅장하게 봉헌된 이 회당은 당시 주민들이 회당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 잘 보여준다. 갈릴래아 호수에는 예부터 지각 활동이 활발하여 현무암이 많지만 회당만큼은 먼 곳에서 가져온 흰 석회암으로 아름답게 지었던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예수님은 ‘생명의 빵’ 말씀을 전해주셨다(요한 6 22-59).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수많은 기적과 말씀에도 깨달음이 없었던 카파르나움!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요한 6 1-15) 흥분하여 또 다른 표징을 기대했으나 이 회당에서 예수님은 금세 배고파지는 빵 대신 하늘의 만나를 찾으라고 가르치셨다. 당신께서 주시는 생명의 빵은 빈곤한 자건 부유한 자건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상적으로 기적에만 몰두한 주민들의 반응은 결국 예수님의 한탄을 산다(마태 11 24-25). 그렇다면 2000년이 지난 후 이 복음을 접하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생의 고통까지 이겨낸다고 입으로는 그럴듯하게 고백하나 카파르나움 주민들처럼 육체를 배 불리는 빵에만 쏠려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김명숙씨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5-02-0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1

시편 115장 3절
우리 하느님께서는 하늘에 계시며, 뜻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다 이루셨도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